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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Jan 24. 2021

24시간 빨래방의 줄서기

Q. 당신의 여름 방학은 어떤가요?




  기록적인 장마가 쏟아졌다. 잠에 막 일어나 후끈해진 입술에 이불이 닿으면 습한 향이 함께 올라왔다. 물먹은 라벤더 향이었다. 24시간 빨래방의 여름밤. 바다 해수욕장에서 모래성을 쌓고 있을 시기에 빨래방 앞에 줄을 섰다. 



  일상이 전복되었다. 육지와 바다가 경계를 잃고 태풍으로 배가 바다에서 육지로 성큼 올라오듯. 옛 추억 속 여름 방학을 복기해보아도 안개와는 다른 묵직한 습기가 장막을 쳤다. 여름에 딸려 오는 온갖 단어가 축축해졌다. 휴가, 차렵 이불, 모래사장, 가문비나무 숲길,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잔바람, 여름 방학. 



  여름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 여름 장미가 피어나는 5월에 어린이 날 노래를 불러보았다. 부끄러웠다. 아이들 앞에 떳떳하지 못하므로. 폐허로 변해가는 어른의 세상에 어린이의 세상도 잿빛이 되어간다. 7월 내리 내린 비는 ‘기후 위기’라는 오래되고 낯선 이름을 가슴팍에 달았다. 집과 학교를 비정기적으로 다녀야하 는 아이들은 우리 세상이 맞는가요 라고 물었다. 백열등을 켜야 하는 실내 풍경이 아이들의 옆 얼굴을 비췄다. 47도 가량으로 기울어진 햇빛은 사라졌다. 뜨겁게 달궈진 놀이터 미끄럼틀도. 폴더폰 옆에 끼우던 키링마냥 아이들은 가방에 우산과 우비를 끼우고 다녔다. 화려해지는 장화와 콘크리트의 잿빛과 먹구름의 잿빛이 산란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여름 방학을 빼앗았다.



  기후 위기는 온 뉴스에 돌았다. 대책에 대해서도. 그러나 수박 겉 핣기에 불과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자면서 고기 광고를 뒤에 끼웠다. 지구 온난화로 시작되는 기후 위기의 증상들은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탄소 배출이 주를 이룬다. 재활용 하는 것만으로는 2050년의 풍경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수박의 속을 까보자고 했다. 동시에 고기를 먹는 사람을 혐오하고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장마철에 쏟아지는 하수구 폐수처럼 쏟아졌다. 이분법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을 리 없다. 지금 우리에겐 2050년을 당장 바꿔야 하는 조급함이 아니라 한 명의 비건 지향이 필요했다. 취향적 이유를 넘어 정치적 공론장이 펼쳐져야 했다. 하지만 공론화는 더디고 배우지 않는 어른들이 지겨워 아이들이 보이콧을 선언하고 환경 운동 시위를 했다. 아이들 손에 들린 팻말이 말했다. “어른들에 미래 못 맡겨”. 우리가 세탁소에 줄을 서고 고기를 구우며 연기를 들이쉬는 동안 아이들이 걷기 시작했다. 우리의 일상이 전복되는 동시에 우리는 변화 해야 했다. 아이들은 전복을 원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시작하여 삶의 한 부분까지.



  바짝 마른 이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깔면서 얼마 있다 또 빨래방에 가서 줄을 서고 동전을 다발로 넣자니 진절머리가 났다. 비건을 시작하는 이유가 윤리적 이유도 있지만, 기후 위기를 직면하고 바뀌기로 한 사람들처럼, 나도 한 달내 내리던 장마의 끝자락에 비건 지향이 되기로 했다. 이 소소한 결정이 ‘스스로의 건강을 확실히 챙기는 진정한 자기애의 실천이고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그릇된 구조의 일부를 향한 몸의 발언’(요조, 『가장 불쌍한 것은 인간』, 중앙 선데이 칼럼)이라는 것은 잿빛 같이 반복되던 일상에 비 온 뒤 떠오르는 무지개와 닮아있었다. 보라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는, 아우러져 다채로운 월남쌈의 자태처럼.



  발목을 깨무는 모기와 빨래방에 줄을 서 있는 우리는 진정 어른인가 자문한다. 숫자로 어른을 따지자면 우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 나무들이 죽어가고(박기용 기자, 『기후 변화로 죽어가는 백두대간 가문비 나무들』, 한겨레 신문). 50살까지 산다는 코끼리가 호수의 녹조 현상에 신경이 손상되어 제자리를 빙빙 돌다 죽어가는 것을 본다면(『보츠와나에서 코끼리 수백 마리 집단 폐사… 원인 불분명』, bbc 뉴스), 우린 과연 숫자로써도 어른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가. 단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특권으로 삼으면서, 2050년이면 죽어 있거나, 곧 죽을 중간의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을 위안 삼으면서.



  우리에겐 권리가 있다. 여름 한 달 동안 24시간 빨래방에 줄을 서 있지 않을 권리가. 아이들과 여름의 단어들이 화창한 하루에 몸을 말릴 기회가. 모래사장, 페스티벌, 화창한 오후 4시경의 가문비 나무 산책로를 되찾을 미래가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닌 희망을 되찾을 수 있다. 사랑과 느림이라는 급진적 정치 취향으로. 













*


   <본 글은 대화의 장 PAGE OF DAEHWA 2020에 기고한 글이며 Q. 당신의 여름 방학은 어떤가요? 에 대한 사사로운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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