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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Jul 03. 2024

나에게 인형이란

행복함과 부끄러움의 공존이다.

'인형'


인형은 초등학교 때 처음 봤다.


우리는 동네에서 '바치키'와 '주서 먹기', '나이 먹기'. '오징어깡' '고구마깡'을 밥먹듯이 했다. 이런 놀이들은 친구, 돌, 놀공간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놀이였고 그 시절엔 친구, 돌, 놀공간은 흔하디 흔한 것이었다.


여자 아이들은 더워질 때즈음에는 옥수수를 하나씩 따서 인형 놀이를 했다. 옥수수수염은 인형의 머리가 되었다. 옥수수 인형의 예쁜 머릿결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익지 않은 옥수수를 따야 했다.  어른들에게 걸리면 안 익은 옥수수 땄다고 디지게 욕먹었다. 지금도 핑크빛 머릿결을 가진 옥수수 인형을 잊을 수 없다. 친구들이 이쁘다고 부러워했다. 친구들과 놀고 집에 밤늦게 들어갔더니 엄마가 "이놈의 가시내 소여물도 안 주고 집소지도 안 하고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냐?"며 비땅을 들고 달려들었다. 안 맞이려고 도망치다 남동생에게 잡혔는데 동생이 "이것 갖고 놀았구먼"하면서 옥수수를 빼앗아 탐스런 분홍빛 옥수수 인형 머리를 쏙 뽑아부렀다. 나는 동생에게 벗어나 일단 도망가서 아무도 없는 건주장에서 머리가 뽑힌 옥수수 인형을 바라보며 었다. 밤늦게 집에 들어와 자고 있는 남동생 얼굴에 볼펜으로 작은 점을 찍는 소심한 복수를 했었다. 점을 째깐 허게 그려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나 혼자 그 점을 보고 큭큭 웃었었다.


옥수수가 안 나올 때는 산에 가면 20cm가량 머리칼처럼 가는 풀이 있었는데 그 풀을 손으로 끊어 가는 막대기에 비닐로 풀을 묶어 인형놀이를 했다. 그 인형은 옥수수 인형과 다르게 머리카락이 길어서  머리를 만지고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머리를 막대기로 돌돌 감으면 곱슬곱슬한 파마머리가 되었다.  


 국민학교 2학년때로 기억한다. 어느 날 수정이라는 아이가 진짜 인형을 가지고 학교에 왔었다. 사람하고 똑 같이 생긴 인형이었는데 가슴이 봉긋 나온 게 특이했다. 수정이를 필두로 하여 도시 이름을 가진 수진이, 소현이, 새롬이, 수지도 인형을 가지고 학교에 왔다. 그 애들은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었는데 인형 머리를 빗고 묶고 옷을 갈아입히며 진짜 재밌게도 놀았다. 아파트 사는 애들 중에는 수정이가 가장 새침했다. 어느  날 수정이가 인형놀이를 하다가 인형의 얼굴이 쏙 빠져 고장 났다며 가질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아파트에 살지 않는 여자애들이 다 손을 들었다. 물론 나도 들었다. 수정이가 그 인형머리를 나에게 줘서 나는 너무 행복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서 어떻게 놀지 궁리를 하다 보니 하교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 수정이 가시내가 인형머리를 주라고 했다. 나는 한 번 주면 끝이지 왜 주라고 냐고 화를 냈다. 수정이가 나를 밀었고 나도 질세라  수정이를 밀었다. 수정이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나도 수정이의 파마머리를 수정이보다 더 세게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그 모습을 선생님이 보고 남으라고 했다. 선생님은  싸운 이유를 듣고 인형얼굴을 수정이에게 돌려주라고 했다. 나는 울면서 인형머리를 돌려주었고 수정이는 가져갔다.


우리는 선생님께 혼나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수정이는 기다리고 있던  세련된 아파트 애들이랑 앞에서 걸어갔고 나는 한참 떨어져서 혼자 걸었다. 수정이가 지 친구들이랑 희희덕거리더니 인형머리를 운동장 구석에 뚝 던졌다. 수정이 리가  학교 밖으로 사라지기까지 기다리다가 나는 다른 사람 몰래 인형 얼굴을 주어 주머니에 넣었다. 가슴이 얼마나 쿵쿵 뛰었는지 모른다. 버린 건데 이상하게 도둑질한 기분이 들었다.


국민학교에서 집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어야 했다. 나는 학교에서 많이 벗어나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인형머리를 꺼냈다. 인형얼굴이 날 보고 웃어줬다.  인형머리 들고 머리카락을 만지고 묶고 놀다가 늦게 집에 도착해  뒤안에 항아리 뒤에 숨겨놓았다. 그날 이후 남몰래 숨어서 인형머리을 가지고 놀았었다. 수정이를 볼 때마다 맘이 편치 않아 한 참 동안 수정이를 피했고 그래서 한동안 수정이랑 싸우지도 않았다.


 인형머리을 가지고 놀 때 행복했다.  인형머리를 가지고 놀 때  도둑질을 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 인형머리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근데 지금도 궁금하다. 수정이는 왜 버릴 인형머리를 나에게서 준 후 빼앗아 운동장에 버렸을까?  철없는 어린이여서 그랬겠지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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