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면 정원은 14개월이 된다.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걷지 않고, 옆에 딱 붙어 있지 않으면 크게 운다. 나에게 많이 의존적이다. 몇 권의 육아 서적에서는 이 시기가 엄마와의 애착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순간이라고 전했다. 엄마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아이는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자존감이 낮은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겁을 주었다. 그러면서 만 2세까지는 최대한 아이를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도 권고했는데, 나는 저자들의 말에 얇은 귀를 팔랑이며 여태껏 정원을 울리지 않고 키웠다. 화장실도 못가게 하는 정원이를 보느라 제 때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날들이 비일비재했다.
꿈꾸는 내가 좋았다. 기자, NGO, 작가 등의 꿈을 꿨었다.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좋았다. 나는 매일 꿈을 꿨고 노력했고 그래서 나의 하루하루는 이상적이고 뜨거웠고 깊었다. 몇 개의 단어로 나를 나타낼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나열할 것이다. 무수했던 밤, 타자기 소리, 가사 없는 음악들, 짧은 명상의 시간들, 남아있는 문장들. 나는 이 단어들 속에 있을 때 온전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단어들이 내 몸과 마음에 깊이 박혀 나를 나로서 지켜주고 있다는 생긱이 든다. 참 고맙다.
육아는 힘들고 또 힘들지 않다. 아기가 울면 힘들고, 아기가 웃으면 힘들지 않다. 아기가 밥을 잘 먹는 모습엔 내 밥 안 먹어도 배부른 것 같다가도, 옷을 입지 않으려고 도망다니는 아기를 잡으러 다닐 때면 기력이 다 빠진다. 일주일은 짧은데 하루는 길다. 어찌나 밀도 있게 1분 1초가 흘러가는지, 울다 웃다를 열 번은 반복한 것 같은데 30분이 채 지나지 않는다. 영원히 이 시간에 갇혀살게 될까봐 간간히 두렵다. 꿈꾸는 나를 잊을까봐. 그럼 그건 내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