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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배 Dec 02. 2021

남기지 않아도 잊히지 않는 순간

전역 휴가 나오는 길

전역 휴가를 나왔다. 이제 군 부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지난했던 군 생활은 오늘로 끝났다.


도열 끝에 위병소를 통과하는 순간, 뭐라 인사드려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부모님을 만나러 걸어 나갔다. 문득 뒤돌아 봤을 때, 적은 햇빛이 드는 겨울 아침, 내가 가는 길 끝까지 손 흔들어주는 간부님들과 후임들.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 손톱 같은 달. 노란 햇빛.


사진을 찍어도 담기지 않는 감정이 있다.

남기진 않았지만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힘든 시기에도 웃음 짓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생활관에서 몰래 라면 먹고 떠들다 잠들 때,

즐겁게 풋살하면서 멋지게 골을 넣었을 때,

당직 끝나고 샤워하는 데 창에 드는 햇볕이 따뜻했을 때,

배수로 작업하다가 바라본 가을 하늘이 새파랄 때,

노래방에서 미친 듯이 노래 부르고 나왔을 때,

새벽 근무 가는 길에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 때,

훈련하다 바라본 하늘에 별들이 수놓은 듯 펼쳐질 때.


후임들이 해주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마음이 울린다. 독서에 공모전에 얻은 것도 많다. 이제 군대 생활관보다 더 전쟁터 같은 사회지만 힘든 일들을 헤쳐낼 동력을 얻었다.


안 다치고 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몇몇 군데 영광의 상처를 입었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수준이다. 나 제법 잘 살았다!


힘든 순간도 제쳐둘 만큼 즐거운 순간들이 떠오른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기쁨이 되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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