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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배 Dec 06. 2021

1년 동안 책 100권을 읽고 느낀 것

책을 읽는다고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원래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안 읽는 사람 중에는 읽는 편이라 책과 담쌓고 사는 정도는 또 아니다. 그래도 대학생 품위에 맞춰 도서관을 자주 들락거리는 정도. 문제는 읽지 않고 반납하는 책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몇 권 읽은 게 어디냐며 합리화하긴 했지만.


군대에 와서 책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좋아졌다. 분기마다 약 20권의 진중문고가 들어오고, 수 천 권 쌓인 도서관이 있는 데다가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게 완전히 자유로웠다. 심지어 내 업무 공간 바로 뒤편에 서재가 따로 있었다. 틈날 때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업무 중 쉬는 시간, 개인정비나 연등 때, 아니면 당직 근무 때 틈틈이 책을 읽어 나갔다. 시간이 될 때마다 읽은 책이 어느덧 100권. 훈련소와 휴가 기간을 빼고 1년 남짓되는 기간 동안 100권을 읽은 것이다.


책만 읽는다고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 인생이 달라진다고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를 현혹시키는 마케팅이다. 인생이 달라지려면 노력이 더 필요하다. 아니면 인생이 달라질 만큼 책을 많이 읽던가. 물론, 인생이 달라지기에 1년이라는 시간은 짧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단기간에 적지 않은 책을 읽고 느끼기에 책에서 얻는 것만으로는 인생이 달라지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거나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경험과 지식이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변화를 떠올려보자. 간접 경험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직접 경험이다. 수많은 직접 경험에도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자조하는데 간접 경험만으로 삶이 변하기란 쉽지 않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지식의 절대량이 일반인과 현저한 차이를 내지 않는 이상 삶은 그대로다. 그냥 조금 더 상식을 뽐낼 수 있을 뿐.


책 읽기로 달라진 약간의 태도

그래도 배우고 느끼는 것이 있다. 책 읽기가 완전히 무용했다면 이미 책 문화는 사라졌을 것이다. 100권을 읽는 동안 장르는 특별히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고루 읽으려고 노력했다. 소설, 에세이, 과학 교양, 사회 교양, 심리학, 자기 계발 등. 그중 나는 소설 읽기가 좋았다.


책을 읽고 '내 인생이 정말 달라졌다'고 느낀 순간은 별로 없다. 하지만 책이 인생에 직접적으로 유용할 때가 있다. 지식의 유용성이라기보단 일상의 감각에 대한 유용성. 특히, 소설에 대한 감상이 그랬다. 유용하다는 것이 경제적이라거나 효율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순간순간 책의 한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이 책이 내게 도움이 됐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면서 남과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김초엽의 <관내분실>에서 잃어버린 것을 마주한 자의 깨달음을,
심윤경의 <설이>를 읽으며 가지지 못한 자가 겪는 설움을.


특히 군대에서는 새로운 만남과 이별이 잦다. 다채로운 페르소나들을 만날 때마다 삶의 영역이 넓어진다고 느낀다.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떠오른다. 그 감각은 초면일 때와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다.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

나는 장르마다 주기적으로 읽은 편이었다. 소설을 읽었으면 다음에는 에세이, 그 다음에는 교양서를 읽는 식이다. 계산적으로 그런 건 아니고 읽다 보니 그렇게 됐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단순하다. 읽고 싶은 책을 읽었고, 좋은 책을 골라 읽었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책장에 이르렀을 때, 한참 동안을 서재 앞에서 서성인다. 책을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책들이 다르다. 한층 넓어진 책의 세계를 맞이하는 것이다. 새롭게 보인 것은 꼭 읽어 보고 싶다. 그리고 읽을지 말지는 서문을 읽어보고 결정하는데, 서문만 읽어도 책의 줄기를 이해할 수 있고 작가의 문체가 나와 맞는지 알 수 있다. 


소설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소설은 서문이랄 것이 특별히 없고 서두에는 보통 이야기를 풀어 놓기 위해 이야기 세계의 장치들을 풀어두는데, 여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끝까지 읽을 탄력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책들이 다시 서재에 꽂히긴 하지만, 한 번 잡히면 놓기 어렵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추천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남들이 좋은 책이라고 소개해주었더라도 내게 울림을 주지 못한 책은 좋은 책이 아니다. 나는 모두들 명서라고 꼽은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최진석 교수의 의도는 명쾌하지만 그것이 어떤 울림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것이 저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나도 이미 했던 생각을 반복해서 말하는 느낌이라 그런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 봐야 내용을 흥미있게 전달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나도 책을 읽다가 집중이 흐려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책을 내려두고 좀 쉬었다 간다. 나중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읽어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미 읽은 부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거기에 집착하면 독서가 완전히 막혀 버린다.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더 좋은 책을 찾아 나서는 게 현명하다.


책 읽기가 가져다 것

책의 내용에서 얻는 것도 많았지만 나는 책 읽는 경험이 더 크게 다가왔다. 100권의 책을 읽으면서 두께감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도 했고, 좋아하는 책을 탐독하고, 좋은 책을 찾아보고, 책에 집중하고, 문장을 모으고, 생각을 떠올리고, 정리하고, 이야기하고, 이렇게 책에 관한 글도 쓴다.


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로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았고, 하루 2시간이 집중의 한계라는 것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생각보다 넓다는 것도, 하지만 좋아하는 장르가 확실하다는 것도 느꼈다.


변화는 이 정도다. 삶은 극적으로 변하지 않아도, 봄에 새잎 자라는 정도로 변화할 수는 있다. 사회에 나가서도 내가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회는 진짜 전쟁터기 때문에. 그래도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새로운 취미가 생겼고, 삶이 조금 넓어졌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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