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책에서 얻는 지식을 이야기하고 다니기를 좋아했다. 어떤 책을 읽고 얻은 지식이 태초의 내 것인 것처럼 굴었던 적도 있다. 사실은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하지만.
한 때 유행했던 책이 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과연 그 책이 목표한 바를 이뤘는지는 잘 모르겠다. 넓고 얕은 지식이라도 온전히 내 것이 되려면 충분한 시간 동안 뜸을 들여야 한다.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 행동이 되고 태도가 된다.
1. 한 권의 책 반복해서 읽기
책을 한 번 읽고 저자의 뜻을 다 파악하기란 어렵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정보들의 유기적인 조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같은 책도 몇 번이고 읽어볼 필요가 있다. 독서백편 의자현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같은 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말이지만 달리 말하면 몇 번 읽은 것으로 뜻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의미한다. 처음 완독하고는 이 책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면 처음 읽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소설의 경우 결말을 알고 보게 되면 재미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읽을 때는 처음 볼 때는 몰랐던, 작가가 던져 놓은 암시와 복선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짜릿함은 겪어본 자만 안다.
2. 다 읽은 책 목차 훑고 내용 떠올리기
책을 다시 읽기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땐 목차를 보면서 다시 되새김질한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해야 할 때 유용하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이 방법을 줄곧 활용해왔다.) 단락마다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나면 인지과학적으로도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3. 같은 소재의 다른 책 읽기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도 좋지만 같은 소재를 다룬 다른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을 읽으면서 행복의 진화론적 관점에 열광했지만, 최인철 교수의 <굿 라이프>를 읽으면서 다시 행복의 현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진화론적 관점을 강조하다 보면 느끼는 허무함을 채워줬다고 해야 하나. 상호보완적일 때도 있고 충돌할 때도 있다. 어떤 때든 의미가 있다.
4.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단순하다. 좋은 책을 골라 읽었다. 책을 읽다 보면 책 속에서 다른 책을 소개해줄 때가 많다. 책이 추천하는 책은 얼마나 좋은 책일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알게 된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를 읽었다. 그리고 <사람, 장소, 환대>에서 알게 된 김찬호의 <모멸감>을 읽었다.
꼬리를 무는 독서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깊이감 있는 독서를 하게 해주기도 하면서, 좋은 책을 큰 힘 들이지 않고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5. 같은 작가의 다른 책 읽기
책을 읽다가 이 책은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같은 작가의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내게는 알베르 카뮈가 그랬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으로 입문해서 <페스트>와 <시지프 신화>를 연달아 읽었다. 카뮈에 빠져 한 때 책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에게 카뮈를 읽으라고 종용한 적도 있고, 다른 실존 철학자의 책을 사 읽기도 했다. 이를 테면, 사르트르의 책.
이때 카뮈가 가진 하나의 생각 -실존과 부조리- 이 어떤 소재와 장르를 만나느냐에 따라 변주하는 것이 재밌다. 게다가 내용 곳곳에 숨어 있는 카뮈의 삶 속의 경험들을 느낄 때면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라도 곁에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장황하게 글을 쓰긴 했지만 결론은 책 읽기를 즐기면 된다. 즐기게 되면 알아서 따라오는 것들이다. 그러려면 내 관심을 끄는 책들을 읽는 게 좋다. 추천도서니,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니 이런 것들은 우선 신경 쓰지 말자. 읽고 싶은 책을 읽다 보면 자연히 좋은 책들이 궁금해질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