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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배 Dec 14. 2021

마음에 시 한 편 품고 사는 삶

낭만 어부 - 낭만을 노래하는 삶에 대하여

이 시대는 너무 많은 것이 주어졌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 하나 찾을 수 없는 선택의 역설이 계속된다.


복잡하다는 것은 양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뇌과학은 인간이 동시에 여러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빠르게 전환이 일어날 뿐. 양의 문제로서 일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기하급수적인 네트워크 힘을 얻는다. 한 인간의 일이 완전히 분리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약한 연결이라도 어느 면에서는 맞닿아 있게 되어 있다. 부담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몇 개의 일을 포기해야 한다. 아니, 이미 포기된다.


그러나 열심히 살아갈수록 너무 많은 것이 요구된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고, 배우고 싶지 않아도 배워야 하고, 심지어는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야 한다. 그럴수록 더더욱 살기 힘들어진다. 정신없고 복잡하다.


현대인들에게 책을 읽지 않는다고 질타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모두 한가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위해 살았다. 내일을 위해 살지 못하고. 우리는 내일을 위해 사는 것 같지만 결국 하루 버텨 내는 삶으로 족한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미래에 치인다. 이런데 책 읽을 여유는 언제 부리겠는가. 그것마저 일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책을 포기한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의무도 취미도 아닌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탐색은 네트워크의 빈 공간에서 시작한다.


어느새인가 시는 죽었다. 시가 사라진 자리에 노래가 들어섰다. 시인은 우습게도 아이돌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배워야 할 나이에 모든 것을 깨달은 사람처럼 읊는 가삿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은 노랫말은 공허하다. 음률을 따라 쉽게 흘러가 버린다. 좋은 노래는 드물다. 그러나 시는 그보다 더 드물어졌다.


시는 무겁다. 한마디 말에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우리가 시를 낭만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그만한 무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낭만(浪漫) 단어 뜻 자체에 물결이 퍼져나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잔잔한 호수에 무거운 것이 던져지면 파문은 넓게 남을 수밖에. 다시 말하지만, 시는 무겁다.


https://youtu.be/Agis2jlOLwk  [full] 다큐 3일 국문학과를 가고 싶었던 낭만어부 댓글모음.zip

시를 잃어버린 세대에게 '낭만 어부'가 보여주는 삶은 낭만적으로 보. 하지만 그의 삶은 낭만적이지 않다. 그가 낭만을 노래할수록 각박한 세태와 한 사람이 처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부각될 뿐이다. 시를 사랑할 수 있던 그 시대를 그리워하고, 국문학에 꿈을 품을 수 있던 그 시대를 동경한다. 어부에게 '낭만'의 수사가 붙게 된 것은 이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고되고 복잡한 삶 속에서도 시를 읊을 수 있으니까. 얼마나 낭만적인가? 하지만 어부의 삶은 여전히 낭만적이지 않다. 낭만을 노래할 뿐이다.


그래도 낭만을 노래해야 한다. 시 한 편 자리할 여유를 만들어야 한다. 가끔 이렇게 글 쓸 수 있는 여유가 다행스럽다. 새로운 시 하나 들어올 자리는 없지만, 담아둔 시를 노래할 수 있다는 것, 떠오르는 관념들을 차곡차곡 모아둘 수 있다는 것.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시 한 편 마음에 두고 살자.

더 이상 노래할 것이 없는 날, 시 한 편이 헛헛한 마음을 달래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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