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환학생으로 안 가?
내 돈으로 가는 미국 유학
군 휴학을 마치고 복학하는 지금 이 시기에 미국을 가겠다고 하면 교환학생으로 가는 거냐고 많이 묻는다. 우리 학교는 교환학생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 대부분 한 번쯤은 고민해보곤 한다. 나도 당연히 처음에는 교환학생을 생각했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크게 둘로 나뉜다. 가서 정말 열심히 놀다 온 사람과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온 사람. 이 둘은 트레이드오프 관계다. 두 가지 모두 잡을 수 없다. 한 가지 공통된 게 있다면 영어를 배워오지는 않는다는 것. 짧게는 한 학기, 길게 두 학기까지 생각해봐도 귀가 새롭게 트였다는 친구는 보지 못했다. 대부분은 이미 영어를 잘한 채로 간다. 정말 가서 수업을 듣고 문화 교류를 하고 오는 것이다. 토익 토플 제대로 봐본 적 없는 나랑 비교할 대조군이 아니다. (영어를 못 하는데 교환학생을 어떻게 가나.)
그럼 영어 공부를 하면 되잖아?
그럼 영어 공부를 해서 교환을 가는 방법도 있을 텐데 왜 내 돈 주고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는가? 고집일 수 있지만 언어는 문화 속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수능 이후로 죽은 영어는 공부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쓰지 못하는 영어는 영어가 아니다. 당장 주변 친구들만 봐도 TOEIC 900점 넘는 친구들이라고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말하지는 못한다. 물론 모두가 네이티브 스피커일 필요는 없다. 그런데 나는 영어를 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학문적인 영어라도 그들의 문화 속에서 배우는 게 낫고, 실용적인 영어라면 더더욱 문화 속에서 배우는 게 낫다.
무엇보다 가장 빠른 방법은 '생존' 영어다. 절실함만큼 강력한 동인도 없다. 살려면 어떻게든 귀를 기울이고 입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교환학생으로 가면 현실에 안주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니까.'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 돈도 내 돈이 아닐 테니 더더욱 절실함은 떨어질 것 같다. 문화를 경험하고 여행 다녀온다고 생각하고 가는 것도 좋겠지만 하여간 목적에 맞지는 않는다.
캘리포니아에 교환학생 친구들이 와요.
교환학생의 또 다른 장점은 안정감과 정보다. 아무래도 같은 지역이나 같은 학교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하면 친밀감도 쌓이고 서로 팁들을 주고받을 수 있다. 나는 교환학생으로 가지 않지만 운이 좋게도 내년에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교환학생 가는 친구들이 많아 걱정은 덜었다. 혼자 가게 되면 아무래도 만날 사람도 없고 힘들 때 의지할 사람도 없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어려운데, 같은 과 친구들이 마침 캘리포니아로 많이 온단다. 모두 University of California(UC)로 가지만 캠퍼스가 다르다. 같은 캘리포니아라도 서울에서 부산 거리보다 멀다. 그래도 타지에서 아는 한국인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안심이 되지 않는가.
교환학생은 나중에.
맞다. 교환학생은 장점이 많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을 가게 되면 학비도 아끼고 비교적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 학점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놀아볼 수도 있고 여행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위험을 무릅쓰고 싶다. 생활보다는 생존에서 배우고 느끼는 바가 많기 때문에. 절실한 사람이 더 도전적일 수 있기 때문에.
교환학생이라는 좋은 기회는 나중에 누리자. 교환학생 유학을 간다면 유럽을 한 번 가보고 싶다. 내 전공인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은 의외로 미국이 아니라 네덜란드다. 그래서 UC도 많이 가지만 우리 과 친구들은 네덜란드도 선택지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아직 학기도 많이 남았겠다, 이번 기회에 미국을 가고 나중에 다시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교환학생을 준비해보자. 그때는 유럽에 가서 마음껏 여행하고 즐기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의 목적에 충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