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에 일어나서 내과인턴 -1
지옥의 내과당직 첫날, 인턴 단톡방이 시끄러워졌다.
"제 그릇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동기가 남기고 간 핵폭탄급 선언에 병원 인턴들은 비상이 걸렸다.
인턴업무는 상반기 도중에는 충원이 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이 인턴열차에서 탈출하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다른 인턴들이 부담해야 하는 구조로, 한명 한명의 역할이 소중한 내과에서는 중도 탈주는 가히 아찔한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탈주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인턴들끼리야 사직을 탈주, 도망, 탈출, 그리고 도망간 사람들을 잡으러 가는 것을 추노라고 부르며
스스로의 노예생활을 희화화하고는 있지만
직장에 사직서를 내는 것은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이자 당연한 권리가 아니던가.
다만 1년을 버티면 끝나는 병원 소속 계약직 노예이기에 다들 12개월만 꾹 참자라며 눈을 질끈감고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 뿐이다.
당연한 권리를 마음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게 붙잡아야 하는
그런 반자유주의적인 책임이 인턴들의 대표에게 있었기에
동기가 짐을 싸고 있다는 소식에 업무를 미뤄두고 숙소로 달려간다.
숙소에 도착하니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마치 알을 품은 어미새처럼
동기를 얼싸안고 달래고 있었다.
따수운 밥을 먹이고, 그럴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건 그 병동이 너무했다. 저건 너 잘못이 아니지. 요건 요렇게 하면 빨라.
적절한 회유와 조언을 섞어가며 풍선처럼 날아갈 것 같은 동기를 정이라는 실로 메어 땅에 묶어두었다.
묶어둔 줄 알았다.
인턴생활을 하며 느끼는 게 몇가지 있는데,
그 중 한가지가 갈 사람은 결국 간다는 것이다.
물론 다섯에 한명 정도는 정말 그냥 잠시 마음이 흔들린 것이고, 설득하면 완전히 돌아오기도 하지만
나머지는 떠난다는 생각이 든 순간 끝이다.
정이라는 일시적인 접착제로 붙잡혀도 일시적일 뿐 날아갈 풍선은 결국 구름 위로 저 멀리 날아간다.
구질구질할 정도로 설득을 하다보면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도, 듣고 있는 상대도
헛웃음이 나온다.
본인이 가겠다는데, 그치?
인턴들이 그만두는 과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내과라던가 외과같이
단순작업이 반복되는 곳이 많다.
드레싱이나 채혈을 말하는 것인데, 비슷한 업무강도이더라도 본인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인턴은 어떤 과에도 속해있지 않은 애매한 위치이기 때문에
붕 떠버린채 지나가는 한달살이 일꾼으로만 취급받는 것이 힘들다.
병동에서 한번, 환자에게서 한번, 이 시간에 출근해서 드레싱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한번
이렇게 도트 공격들을 맞다보면
그릇이 와드득 깨지게 되는 것이다.
이미 깨져버린 그릇은 아무리 살살 다뤄도 쉬이 붙지 않는다.
풍선을 타고 병원 밖으로 날아가버린 동료인턴이
부디 그곳에서는 행복하기를 바라며 (이렇게 말하니 돌아가신 것 같은데..)
나는 이만 아직 깨지지 않은 그릇들이 깨지지 않도록 접착제를 후-불며 붙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