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Y percent
Dec 31. 2023
소아환자를 위한 글러브 풍선
뭐든 하는 응급실 인턴 -2
응급실은 정말 대기시간이 길다.
특히나 어디가 찢어져서 온 환자들은 정형외과나 성형외과 진료를 보게 되는데
응급실은 중증도에 따라 분류를 하다보니
단순 열상, laceration 환자는 그 순위가 뒤로 뒤로 밀려난다.
어른들이야 충분히 기다릴 수 있지만
(물론 이걸 기다리지 못하는 술에 잔뜩 취한 어른이들도 계신다.)
아가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게 된다.
잠에 스르륵 빠져드는 얌전한 친구들도 있고, 심심함을 참지 못하는 금쪽이들도 있다.
오늘의 소아환자는 손가락이 찢어져 방문한 귀여운 7살 환아로,
양갈래를 하고 심심해서 응급실을 뱅글뱅글 돌고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아가들을 보면 뭐라도 해주고 싶어지는데 안타깝게도 응급실에는 장난감이 없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글러브 풍선!
있는거라고는 소독약 반창고 주사기 뿐인 이 삭막한 응급실에서 그나마 재밌어보이는 게 이 s 사이즈 글러브라니.
풍선을 불 때 고무 냄새가 좀 나지만 아무렴 어떠랴.
요즘 애기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시대에 뒤쳐진 늙은 인턴답게 인터넷에 사전조사를 끝마친 뒤 헬로 키티를 그려준다. 산리오? 아무튼 그런 걸 좋아한다는거지?
헬로 키티는 나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장수의 비결이 뭘까? 부럽다.
헬로키티라기에는 조금 찌끄러진 고양이 같다만 마음이 중요한거 아니겠어.
아가가 좋아하려나 부푼 마음을 안고 다가간다.
이게 뭐야~~? 풍선이네~~~
감사하게도 꺄륵거리며 손가락이 달린 풍선을 가져가는 소아환자.
성형외과 선생님이 보러오실 때까지 그 글러브 풍선을 꼭 쥐고 있는 모습에 몹시 뿌듯해졌다.
사실 중간에 흥미를 잃고 응급실 어딘가에 버릴 줄 알고 사진을 안 찍었는데
기분 좋게도 아가가 풍선을 들고 집으로 가서 흔적은 없지만 오히려 좋아.
아쉬운대로 늙어버린 인턴들을 위한
글러브 풍선도 후후 불어 준비해본다.
다 커버린 우리 인턴 선생님들은 풍선을 보며 꺄륵거리지는 않았지만 며칠이 지나 흔적없이 사라진 그 풍선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있을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