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8] 올레 모닝로그
3일 연속 알람 없이 눈이 떠졌다.
심지어 오늘은 아직 새벽 4:30분이다. 서울에서 이 시간에 잔 적은 있어도 일어난 적은 화장실을 가야 할 때 빼고 없었다. 깜깜한 밤이 너무나 어색해(는 핑계고 졸리긴 졸렸다) 눈을 감았지만 5:30분에 다시 깼다. 이건 나가라는 뜻이리라.
그래, 오늘은 해가 나를 대신
내가 해를 기다려보자!
바닷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멈출 수 없었다.
3일 연속 알람 없이 기상한 것과 3일 연속 달릴 수 있는 것은 우연일까, 체력이 좋아진 걸까? 어제만 해도 5분조차 뛰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야생마처럼 멈출 수 없었다.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리는 순간, 마치 엄마 뱃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진짜 내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렇게 30분간 4km를 뛰고 나서야 체력이 소진되었다.
의자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펼쳐져 있는 돌 위에 그대로 앉아 3분 타이머를 켰다. 명상의 시간이다. 이번에는 온전히 바람을 느껴보기로 했다. 30분보다 더 길게 느껴진 3분이었다.
눈을 뜬 그 순간, 구름 사이로 애태우던 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다의 수평선 대신 구름의 수평선 속에서 떠오르는 오직 나를 위한 일출이었다! 이때의 감정은 글자 따위로 표현하기 미안할 정도로 장엄하고 기이했다. 자연의 현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를 느낀 순간이었다.
이 마음 그대로 아침부터 제주 흑돼지를 구워 먹었다. ^^ 저녁에 먹는 최후의 만찬과는 다른 또 다른 최선의 만찬이었다. 더 행복한 건 아직 8시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 2시간 만에 행복이라는 감정을 최대치로 느꼈다.
올레길을 걸으며 생각한 것은 어떻게 행복한 ’하루’를 보낼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휴양지라도 하루 종일 계속 행복할 수는 없었다. 애써 찾은 맛집이 별로일 수도, 더우면 너무 덥다고, 비가 오면 비가 내린다고, 조금의 불평은 늘 존재했다. 그럼에도 휴양지에서의 하루는 행복한 하루로 기억에 남는다. 왜? ‘잠깐’이라도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 2시간 동안 내가 몸소 알게 된 것은 세 가지다.
1. 행복은 만들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의도적으로 느낄 수 있다. 오늘의 일출은 감히 내가 만들 흉내도 낼 수 없는 자연의 현상이었다. 매일 떠오르는 해를 오늘은 내가 기다려보며, 나는 그 짧은 몇 분간 행복을 느끼기로 했다. 행복은 느끼는 것이다.
2. 하루 종일 행복할 수 없다, 다만 하루의 잠깐은 꼭 행복해질 수 있다. 24시간 중 한 번이라도 행복함을 느꼈다면 그 하루는 행복한 하루가 될 수 있다. 행복을 몰아 받으려 하지 말고, 하루에 조금씩 느껴보자.
3. 작은 행복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다만 earlier the better, 일찍 느낄수록 더 오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제 왜 그리 많은 책들이 새벽 기상을 얘기하는지 알겠다. 일상 속으로 돌아가 출근 전 새벽 2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줘보고 싶다.
오늘은 올레길을 걷지 않아도 되겠다. 이제 아침 9시, 하루의 시작인데 벌써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