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월 Jan 30. 2021

죄송한데, 바지 좀 입고 다녀 주시겠어요?

더 이상 휘말리고 싶지 않은 예민한 인간의 소심한 상념

한정된 시야의 선별 진료소

 날씨가 추우면 고글이나 페이스 실드 안쪽에 김이 서려서 시야가 차단된다. 온도 차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내부를 깨끗이 닦아내고 싶지만 쉽지 않다. 입고 있는 레벨 D 방호복의 겉면은 전부 검사자들의 비말에 노출되는 면이므로 '오염' 공간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고글 내부를 닦아내려거든 장갑을 포함한 겉면을 모두 제거한 후 깨끗한 손으로 닦아내야 한다. 속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계산해본다. 빠르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쿨하게 김이 덜 서린 부분으로 눈알을 굴린다.


 정해진 시간에 일이 끝나면, 우리는 방호복을 벗는 대단히 중요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방호복의 겉면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묻어있을 수 있으니 어디에도 내 몸이 닿지 않게 벗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못하고 최소한 두 명 이상이 함께 해야 하는 불편한 과정이다. 가끔 예기치 않게 몸이 겉면에 닿기도 한다. 방호복이 중간에 손상되어 불가피하게 피부가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 소독제로 박박 씻어낸다. 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불안하고 찝찝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많지 않다. 다만 혹여라도 걸리게 되면, 늘어난 한 명의 확진자로 인해 이름 모를 어느 중환자의 치료가 더뎌질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나를 두렵게 한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병상수 부족'과 같은 문제는 그런 것이다. 중증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일반 병동에서 힘겹게 질병과의 투쟁을 이어나가고,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할 사람이 집안에서 혼자 외로이 사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내가 건강한 매개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약간 있긴 하지만, 그건 사실 그리 크지 않다. 나는 연말에도 연초에도 사적으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Zoom으로 영상 통화하는 것으로 만족했으며 내 주된 이동경로는 집, 직장, 그 사이에 테이크 아웃을 위해 잠시 들르는 카페(물론 이 과정에서 마스크를 안 쓰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뿐이기 때문이다.




마스크 왜 안 쓰세요?

 그런 일상적인 과정을 거치고 퇴근하는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카페에서 취식이 오랜만에 허용된 첫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소위 인스타 핫플이 많은 동네에 산다. 집 근처 자주 들르던 개인 카페에서 커피를 포장할 생각으로 들렀는데, 문 앞에서 멈칫했다. 통유리 안으로 보이는 곳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들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다. '음료를 먹기 위해 잠시 벗은 거겠지' 하고 넘기기에 그들의 잔은 너무도 말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온 지 한참 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눈 앞의 유리문에는 마스크 착용 권고문이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현재 방역수칙 : 카페에서도 취식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함.)


 나는 고민하다 결국 문 열기를 포기했다. 만약 저들 중에 확진자가 나온다면 (그들이) 마스크를 안 썼기 때문에 들른 사람 모두 역학조사 대상이 된다. 그 말인즉슨, 가능한 한 빨리 코로나 검사받아야 하고 결과 나올 때까지 자가 격리해야 하며(최소 이틀) 만약에라도 양성이 나오는 순간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일하는 건 고사하고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격리하게 될 것이고,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새로운 인력이 올 때까지 최소 며칠간 두 배로 일하게 될 것이다. 폐 기능이 영구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치료제로 사용할 약제들의 광범위한 부작용까지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급격하게 짜증이 몰려왔다. 스스로의 안전을 담보로 그 공간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가서 마스크를 써달라고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라는 말 한마디에 화를 내고 욕하는 인간들을 작년 한 해동안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우울한 빈 손, 너덜거리는 기분과 함께 집으로 향하는 데 쓰레기를 버리러 온 같은 동 이웃과 마주쳤다. 역시 마스크는 온데간데없었다. 먼 곳에서 기다리다가 비싸 보이는 두툼한 패딩의 뒷모습이 시야에 잡히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입구로 들어갔다. 마스크를 안 쓴 이웃을 마주친 것은 이번 주만 세 번째였다. 이해가 잘 안 됐다. 나는 현관문을 나설 때 마스크가 없으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상의나 바지를 안 입고 밖에 나서는 기분이다. 너무 일상적이고 당연하고 보편화되어서, 없으면 사람들의 시선부터 걱정이 되고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 뉴스에 나올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죄송한데, 바지 좀 입고 다녀주실래요?

집에 도착해서 손을 씻고, 입고 있던 옷을 전부 세탁기에 넣은 뒤, 같은 동 주민 모두에게 마스크 착용 권고하는 문자 발송을 정중히 부탁드렸다. 구구절절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이유를 작성해놓고 보니 또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내 입장에선) 너무 당연한 거라서, 마치 내용이 "바지 좀 입고 다녀주실래요?"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걸 공지까지 해야 해? 싶다가도 그런 사람이 많은 현실을 떠올리면 반대로 내가 과하게 예민한가 싶기도 했다.


불감보다 과민, 해결보다 예방

 의료진으로 일하면서 몸소 깨달은 사실인데, 모든 안전사고는 예방 쉽지만 일단 한 번 발생하면 해결이 매우 어렵다. 안전사고란 일단 발생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결과와 마주해야 한다. 특히 낙상 같은 문제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한 번 발생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도 많다. 코로나도 똑같다. 마스크 안 쓰는 것도 사실 별 일 아니다. 귀찮았을 수도 있고 까먹었을 수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알짜배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 순간에 마주친 이름 모를 인간들에게 빠르게 옮겨간다. 이름 모를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과정이 이제껏 우리가 보낸 2020년의 과정이다. 아마 2021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다분히 긍정적인 그들의 마음이 내 출퇴근 풍경 사이에서 시끄럽게 울려대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마스크  빼고 얘기하면 어때? 잠깐 담배 피우러 가는데 마스크  쓰면 어때? 쓰레기 버리는 동안 잠깐  낀다고    있겠어? 아무 문제없을 거야.


제발

 방역 수칙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아주 최소한의 규칙이다. 방역 수칙 지키면 100%  옮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대유행이라도 막으려면 최소한  정도는 해야 한다는 거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진짜로 코로나 종식(!)을 꾀하려거든 그보다 더한 조치들이 필요할 것이다.) 근데 그 최소한이 그렇게나 어렵다. 어쩌면 단체로 안전불감증에 휘말린 걸지도 모른다. 나 같은 소심하고 과민하며 부정적인 인간은 오늘도 집구석에 틀어박혀 존재감 없는 글이나 쓰고 앉아있다. 제발 방역 수칙  지켜주세요. 제발요.  

  




매거진의 이전글 봉사 같은 소리 하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