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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월 Jan 28. 2021

봉사 같은 소리 하네

코로나 파견 간호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

 무심코 열어본 인터넷 기사 화면에 <코로나 봉사 간호사>라는 단어가 대문짝만 하게 걸려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묵직한 불쾌감이 혈관을 타고 온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기사를 클릭하여 천천히 읽었다. 제주 생활치료센터에서 간호사 근무 4일 전에 일방적으로 채용을 취소했다는 내용이 그 기사의 골자였다. 내용도, 글도 심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요즘은 봉사자를 모집하지 않고 <채용> 하나 보지?


 스크롤을 내리다가 멈칫했다. 댓글창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남겨놓은 흔적이 보였다. 파견 간호사  많이 준다던데, 그게  봉사야? 근데 그들의 언어에는 간혹 내게 없는 감정이 하나 더 서려있기도 했다. 봉사 같은 소리 하네.  많이 준다고 해서 병원 버리고 뛰쳐나간  아냐?

 비난조의 언어에는 그들의 오해가 절절하게 묻어났다. 마치 간호사가 스스로를 <봉사 간호사>라고 지칭한 것 같았다. 파견 간호사를 '잘못' 지칭한 것은 기자였지만 비난의 대상은 간호사다. 기사나 댓글이나 글을 쓰는 것은 너무 쉽고, 오해는 빠르게 퍼져나가며, 결과는 항상 애먼 사람이 감수해야 한다.




코로나 파견 간호사에 대한 진실

 생활치료센터에 근무하고 싶다면 대한간호협회에서 제공하는 채용 정보를 확인하고 지원하면 된다. 정식 명칭은 <코로나 19 파견 간호사>다. 채용정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봉사라는 단어는 그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주는 일당이 20~30만 원이며(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다르다.)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따로 숙박비도 제공한다. 일하는 개인의 마음 어딘가에 봉사정신이 깃들어있을 수는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봉사 간호사>는 아니다. 어떤 봉사자가 저런 일당을 받는가? 기자의 단어 선택은 확실하게 틀렸다.


 코로나 파견 간호사는 대부분 1달 계약이다. 아무리 길어도 3~4개월이다. 확진자가 늘고 일손이 필요하면 계약을 연장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2~3주 만에 짐을 싸기도 한다. 파견 간호사가 되기 위해 병원에서 뛰쳐나오는 사람은 솔직히 거의 없다. 면허나 경력이 있으나 다른 이유로 쉬고 있던 유휴간호사나, 퇴사를 마음먹고 있었는데 파견이 기회처럼 느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종합병원은 정규직으로 간호사를 채용하고, 끽해야 1~2달의 파견 근무를 위해 직업의 안정성을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파견 간호사 사태(!)를 보고 기존의 간호사들은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을 수는 있다. 배신감도 들 것이다. 병원에서 그동안 온갖 개고생을 다했는데, 급하게 구한다고 파견 간호사에게 그런 특혜를 주는 것을 보며 공정성의 붕괴를 느끼며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사실 나도 이 정책은 뿌리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직하고 싶다.>와 <이직하겠다.>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봉사 같은 소리 하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대학교 2학년을 끝마칠 무렵 지도교수님과 편입(혹은 전과)을 주제로 긴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무렵 스스로에 대해 활발히 성찰하며, 나라는 인간은 봉사정신이 딱히 투철하지 않다는 결론을 막 내린 참이었다. 그런 내게 아픈 사람을 돌보는 고된 일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 내 이야기를 듣던 교수는 내게 촌철살인과 같은 한 마디를 날렸다. 도대체 어떤 봉사가 그렇게 많은 돈을 주니? 봉사정신으로 하는 일 아니고 돈 받고 하는 일이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간호사 하면 가장 먼저 나이팅게일을 떠올리고 대단한 봉사정신을 생각하지만, 현실에서의 간호는 봉사의 수단 이전에 생계 수단이 된다. 간호는 돈 받고 하는 일이다. 돈 받고 하는 일을 대단한 봉사처럼 취급하는 것은 너무 부끄럽다. 마음 한 구석에 봉사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을지언정,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문제다. 간호를 '봉사'라는 직접적인 단어로 지칭하는 순간, 그 진의는 모습을 금세 감춰버린다. 간호사에게 봉사는 애초부터 내면에 존재하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드러날 때라야 빛나기 때문이다.

 



가볍게 표현하기에 너무 무거운

 그 글은 간호사가 비난받기를 바라며 쓴 글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간호사들을 인터뷰해보고 그들의 정신에 감명받아 일부러 단어를 그렇게 바꿔 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진짜 봉사 정신이란, 가벼운 수식어로 사용되기에는 내면 그 깊은 해저에 무겁고 진중하게 가라앉아있다. 잘못된 표현은 쉽게 오해의 파도를 불러일으키고, 그 끝에 따라오는 다각적인 비난은 커다란 태풍처럼 우리의 마음을 한껏 쓸고 간다. 나는 언론학이나 언론인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기존에 없는 새로운 표현을 사용하고 싶거든 적절한 확인 과정을 거쳤으면 좋겠다. 코로나 파견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간호사들과 수십 번도 더 해봤지만 단 한 번도 코로나 봉사 간호사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도 뱉어본 적도 없다. 기사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부당해고였겠지만, 사람들은 그 괴이한 단어에 꽂혀버렸다. 진짜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파편이 되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선별 진료소에서 근무하던 나도, 마침 계약된 기간보다 빠르게 근무를 종료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막 받은 참이다. 근무 4일 전 채용 취소를 당한 간호사들의 안타까움을 공감하고 슬퍼하며, 댓글의 오해를 삼켜내고 있다. 꽤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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