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강 May 04. 2024

우리집 벌들의 가출 사건

집 나간 벌들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삶의 지경을  넓혀간 것

" 펜스 위에 벌들이 엄청 몰려있는 것 봤어?"

"엥?"

" 우리 집과 옆집 사이 펜스에 벌들이 몽땅 몰려나와 덩어리로 붙어있어. 빨리 와봐."

" 어어어?, 언제부터?, 아이코, 큰일 났네."

"어제 저녁에 보니까 안보이던 게 보여서 나는 누가 텃밭 일하다가 수건 걸어놓은 줄 알았어."

"오마나, 저 녀석들이 또 분봉을 했네, 어쩐다냐.."


(  펜스위에 몰려있던 벌들 )


옆집에서 전화로 알려온 소식에 부랴부랴 슬리퍼를 신고 집 뒷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역시나다. 어떤 벌통에서 몰려나왔는지 벌들이 펜스에 뭉쳐 매달려있다. 작지 않은 규모이다.

삼각형 모양으로 덩어리 져있는 벌들의 가운데에는 약간 덩치가 큰 여왕벌인듯한 녀석이 언뜻 보인다.


사실, 이번 벌들의 분봉은 첫 번째가 아니다.

두 주 전 일요일,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해도 화창하고 포근하던 날, 한 무더기의 벌들이 짝짓기 비행을 한 뒤 집 울타리 근처의 나뭇가지 위에 덩어리 져 앉아있었다.

다행히 분봉된 벌들이 멀리 가지 않고 그리 높지 않은 나뭇가지에 몰려있어 남편과 나는 가까스로 급조된 새 벌통에 넣어줄 수 있었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분봉된 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급하게 유튜브로 검색하고 물로 분무를 해서 날지 못하게 만든 뒤 나뭇가지를 털고, 그도 안돼 사다리로 올라가 톱으로 나뭇가지를 자르는 등 무진 애를 썼었다. 


(  어떻게든 제집으로 돌려보내려고 애를 쓰는 bee keeper )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며칠뒤 또다시 벌들이 분봉이 되었고 꽤 많은 벌들이 벌집에서 나와 두 덩어리가 또 나무 위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쳐다만 볼 뿐 주 bee keeper인 남편이 집을 비워 내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오며 가며 걱정스럽게 바라만 보던 벌들은 그다음 날 역시 화창한 시간 즈음에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아마도 이번 봄에 여러 마리의 여왕벌이 태어나서 그런 것 같았다. 첫 번째 대규모의 분봉이 실패한 뒤 다시 가출한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벌통에서 새로 분봉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벌써 2 패밀리가 분봉한 셈이었다.


그렇게 분봉이 마무리되었나 싶던 지난 주말, 또다시 분봉이 이루어진 것이다.

벌통에서 나와 왕왕거리던 녀석들이 역시 징검다리 가출 장소로 펜스를 선택한 거다. 우리 집과 헤일리네 집을 경계한 펜스는 남향이어서 오랜 시간 햇빛이 비추는 곳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 탓이었으리라.

금요일에 가출한 벌들이 아직 그대로 있으니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정착할 곳을 아직 찾지 못해서 인지 모르지만 하루이틀 여지가 있어 보였다. 제발 그대로 있어주었으면...

다음 주 월요일이면 bee keeper가 돌아오니 그때까지 그대로 있어주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그런데 일요일 오전 11시쯤, 또다시 마당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급히 나가 보니 또 집 뒷마당이 난리가 났다.

떼로 나온 벌들이 붕붕거리며 날아다니고 또다시 나무 위쪽에서 뭉치고 있었다. 또 분봉이 난 거다.

이번 분봉의 규모도 장난이 아니었다. 벌통의 벌들이 몽땅 나온 것 같았다. 어쩐다지!!...

그렇게 30여분 가까이 붕붕거리며 날던 벌들은 사다리로도 닿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작은 패밀리 하나가 뭉쳐있는 같은 나무 위였다.

날씨는 본격적으로 무르익은 봄날씨로 한낮의 온도는 따가웠다. 

한밤중과 새벽녘의 냉기가 완전히 가시고 기운을 차리고 나면 어디론가 날아가버릴까?, 알 수 없지만 남편이 돌아오는 월요일까지 그대로 있어주기만 바랄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덩그러니 놓여있는 세 개의 벌통에 여전히 여왕벌과 벌들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걱정스러운 마음에 두어 번 내다볼 때까지도 그대로 있던 벌들이 오후 세시쯤 나가 보니 모두 가버리고 없다.

펜스에 삼각형의 모양으로 뭉쳐있던 녀석들도, 오늘 아침 분봉되어 나뭇가지 높이 뭉쳐있던 녀석들도, 같은 나무에 3일 동안 뭉쳐있던 작은 덩어리의 녀석들도 모두 떠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햇살만 내리 꽂히고 있었다. 벌을 키운 이래 처음 겪는 일들이었다.


( 분봉을 시작하려고하는 벌들 )


지난 금요일부터 벌어진 대규모 분봉사태로 어찌할 바 모르던 심란한 마음이 급격히 허전함으로 바뀌었다.

벌통을 드나드는 남아있는 적은 수의 벌들을 보니 어쩌면 새로운 여왕벌을 중심으로 한 분봉이 아니라 기존의 여왕벌이 대군단을 이끌고 딸에게 집을 물려주고 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속수무책으로 날려 보낸 벌들을 생각하니 여간 허전하고 아쉬운 것이 아니었다. 

괜스레 벌통 주변을 서성이며 스스로를 다둑이던중 문득 180도 정반대의 기특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렇게 하려고 벌들을 키우는 게 아니었나?" 하는.


전문 양봉인처럼 새로 태어나는 여왕벌을 없애주거나 또는 새 여왕벌을 중심으로 새로운 벌통을 만들어 더 많은 벌꿀을 따려고 시작한 게 아니지 않았나 싶은....

한두 개의 벌통에서 새로운 여왕벌이 태어나고, 그 여왕벌이 꾸린 새로운 군락이 생겨나고, 거기서 또다시 새로운 여왕벌과 군락이 생겨나 동네에 퍼져나가기를 바라면서 시작한 일이었다. 

따뜻한 봄날이면 벌들의 스워밍을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가을이면 벌꿀을 따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시작한 일. 벌들의 스워밍과 이소를 아쉬워할 일이 아니었다.

부디 집이 될만한 따뜻하고 안전한 곳을 찾아 정착하길, 그리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가족을 번성시켜 나가길.



"동물행동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나라를 세워 본 경험도 없고 통솔력도 부족한 새내기 여왕이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는 노련한 앞 세대 여왕이 심복들을 데리고 새 집을 짓는 것이 훨씬 합리적일 것."이라는 최재천 교수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 지음, 효형출판) 말대로라면 분봉의 규모나 남아있는 개체수를 두고 볼 때 아무리 생각해도 기존 두 개의 벌통에서 노련한 여왕들이 자신들의 대 군단을 이끌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선 모양이다. 

그렇다면 지금쯤 우리 집 벌통엔 새내기 여왕벌이 갓 태어난 일벌들을 거느리고 열심히 알 낳을 집을 짓고 있지 않을까?


아마도 올봄엔 우리까지 나눠먹을 꿀은 없을것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20년 전 선생님을 만난 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