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내게 할머니가 돼라 한다.
잠시 짬을 내서 강아지 산책을 나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우중충한 날이라 산책이라기보다는 바쁜 우리들로 인해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녀석에 콧바람을 쐬어주기 위해서였다.
집밖으로 나온 강아지는 앞집과 옆집 마당들에 흩뿌려진 동네 친구들의 냄새를 쫒느라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그렇게 두어 집 건너 걷고 있자니 뒷마당에서 놀고 있던 꼬마 하나가 울타리 사이로 우리를 발견하고는 펜스 문을 열고 우리 강아지에게로 달려 나온다.
아니, 저 꼬마가 누구야?, 이웃집 부부의 아이 아닌가?, 얼마 전까지 유모차를 타고 다니던 저 아이가 벌써 저렇게 컸나?, 걷는 정도가 아니라 뛰어다니네!
폴짝거리며 앞마당으로 뛰어나오는 꼬마를 뒤쫓아 아이의 엄마가 걸어 나오며 우리를 보고 활짝 웃는다.
나 - 아니, 아이가 벌써 이렇게 자라다니 놀랍네요. 아기가 아니라 이젠 소년이네, 소년!
그녀 - 그러게 말이에요. 하루종일 뒤쫒아다니느라 정신없어요. 아, 따님도 아기를 가졌다면서요?
정말 축하드려요. 근데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나 - 딸이랍니다. 손녀가 태어난대요. 벌써 36주랍니다.
그녀 - 어머, 그럼 곧 태어나겠네요.
나 - 예, 9월 22일 경이 예정일인가 봐요. 딸이 나이가 조금 있어서 걱정이에요.
그녀 - 괜찮아요. 저도 35살에 임신해서 36살에 낳았어요. 걱정 마세요. 아무 문제없이 순산할거예요.
그렇게 나는 그녀의 축하를 받으면서, 또 몇 달 사이 몰라보게 커버린 그녀의 어린 아들을 바라보면서 새삼 내가 이제 할머니가 되고 곧 손녀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진짜 내 딸이 아기를 낳는단말이지?
내가 첫딸을 낳았던 것처럼 딸도 딸을 낳는다고?
그러면 나는 손녀의 할머니가 되는 거네?
아, 그렇군, 내가 할머니가 되는구나!!!
딸부부는 임신사실을 임신 안정기에 들어섰을 때에야 알려주었다.
그동안 손자녀에 대해 조바심을 내지도 않았고 딸부부도 이제 겨우 직장생활과 둘만의 가족생활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아직 내가 은퇴를 못하고 있어서 산후 도움과 아기 돌봄에 전폭적으로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하늘에 섭리에 한방에 조정이 되어 버렸다.
아기의 출생일이 잠정적으로 정해짐에 따라 딸부부의 출산 휴가 문제도, 나의 스케줄도 출산일에 맞혀졌다.
딸부부는 출산 직전까지 근무를 하고 서로 교대해 가며 휴가를 쓸 계획인가보다.
나는 출산을 위해 병원으로 출발했다는 딸의 전화를 받는 순간 출동할 예정이다.
생각 같아서는 아기의 백일까지 곁에 있어주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내게 허락되는 시간은 두 주가 최대한이다.
그동안 걱정하지 말고 아기 낳으라고 큰소리쳤던 예비 할머니의 허세가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어쨌거나 아기가 태어난다. 한편으론 가슴 벅차고 한편으론 삶의 흘러가는 속도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 딸이 엄마가 되고 내가 급기야 할머니가 되다니...
내가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의 감정이 기쁨과 두려움이었다면 할머니가 될 때의 감정은 기쁨과 아쉬움이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은 동일하되 딸과 손녀로 인해 자각하게 되는 시간의 유한함, 그 짧은 시간에 대한 아쉬움, 그 아쉬움으로 인해 갖게 되는 '지금'의 소중함이 명료하게 다가온다.
앞으로 이 모든 느낌과 생각, 경험들이 또 다른 나, '할머니'로서의 나를 새롭게 만들어나갈 것이다.
장보러 수없이 가던 코스코에서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아동복 매대에 이제는 시선이 갈 것이고,
삼십년 전에나 들러보던 서점의 아동도서 섹션에 요즘은 무슨 그림책들이 있는지 찾아보게 될 것이고,
식품첨가물이 들었는지 말았는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던 음식 대신 아이에게 어떤 식재료와 음식이 좋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매일매일 커가며 달라지는 아기의 성장을 지켜 보면서 경이로움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아마도 '할머니의 삶'이란 그럴 것 같다. 나이들어 조부모가 되는 기회를 갖는것은 축복일것같다.
내가 점점 작아지는 대신 내 손녀가 점점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삶은 조금 더 깊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