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마주하는 그 두려움의 실체
그동안 끊임없이 들어오느라 이제는 건성이 되어버린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위기감이 너무나 소시민적인 내 일상에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며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소나기와 엄청난 천둥번개, 제멋대로인 온도변화, 영하의 날씨에 꽃을 떨구고 열매를 못 맸는 복숭아나무, 붉은 칸나꽃을 찾아오지 않는 벌새들...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이런 낯선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속수무책의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1. 올해 처음으로 과수원엘 다녀왔다.
7월 중순이면 이곳 메릴랜드의 시골 과수원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복숭아를 사기 위해서였다.
마트에는 애진작에 복숭아가 선을 보였지만 그 복숭아들은 조지아 같은 남쪽의 과수원에서 올라오는 것들이다. 아무리 물류시스템이 좋아도 내가 사는 지역의 과수원에서 그날 아침에 딴 복숭아의 싱그러움과 단맛을 따라갈 수는 없다. 해서 우리는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해 복숭아 한철의 호사를 부린다.
이른 아침 우리는 전화로 오늘 수확한 황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세 박스를 미리 주문했다.
사실 새콤한 황도보다는 더 달콤한 백도를 좋아하지만 백도는 어찌 된 일인지 갈수록 수확양이 현저히 적어졌었다. 그 과수원만의 문제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백도를 사러 갔다가 황도만 사가지고 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오늘도 역시 백도는 아예 보이질 않고 황도만 쌓여있다. 작년에는 어쩌다 한두 번 백도를 사 올 수 있었는데 올해는 아예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값을 치르면서 나는 주인아저씨에게 백도와 화이트넥타린은 언제 수확하는지(또는 아예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할지)를 물었다. 백도를 살 수만 있다면 며칠 뒤래도 다시 올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기대하지 말란다.
지난봄 백도 나무가 한창 꽃을 피울 때 기온이 화씨 19도(영하 7도 안팎)로 떨어지면서 꽃들이 다 떨어져 버렸단다. 꽃이 피지 못했으니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거지.
불과 5-6년 전만 해도 여름날의 과수원 나들이는 풍성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어느 여름엔 백도, 황도, 넥타린들이 너무 크고 싸서 차 트렁크와 뒷좌석까지 가득 차도록 사 와서 이 집, 저 집 원 없이 인심을 베푼 적도 있었다. 한 박스씩 나눠드릴 때마다 주는 우리도, 받는 분들도 그 달콤하고 탐스러운 복숭아에 부자가 된 듯 흐뭇한 마음 한가득씩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풍성한 복숭아를 찾아볼 수가 없다. 올해처럼 기온이 불순하거나 영하로 내려가는 일들이 반복된다면 앞으로도 열매 맺을 꽃들이 배겨 날 수가 없을 것이다. 결국 황도보다 생명력이 약한 백도부터 사라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복숭아라는 과일 자체가 우리 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2. 무슨 비가 이렇게 오는 것일까?
본격적인 한여름이 되기도 전에 늘 무더위는 찾아왔고 푹푹 찐 날 끝에는 반드시 소나기가 왔다.
푹푹 찌는 무더위와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구름이 어느 순간 검은 구름으로 바뀌며 퍼붓는 소나기는 일반적인 기상현상으로 내 평생 보아온 여름의 전형적인 날씨이다.
하지만 얼마전 이곳에 쏟아진 소나기는 소나기라고 하기엔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
말 그대로 양동이로 쏟아붓는듯한 비였다.
어느 날에는 천둥소리가 어찌나 깊고 멀게 들리는지 검은 구름의 두께와 양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지난달 16일 폭우가 쏟아진 워싱턴 디시 주변엔 무려 2만 6000번이나 번개가 쳤었다는 기사까지 있었다. 믿기지가 않을 지경이다.
얼마 전 텍사스에서 있었던 집중 호우와 같은 양상이다. 물론 그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요즘 같은 소나기는 무섭다.
덥기도 너무 덥다가 한번 쏟아부었다 하면 홍수가 날 지경이라 아침마다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살펴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전 세계적이라는 거다.
한국의 날씨도, 유럽의 날씨도 폭염과 국지성 호우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한 개인에 불과한 내가 이런 지구적 기후 문제에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카우니에 요청해 사용하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이 이런 나에게 조금의 위안을 준다.
그동안 텃밭용 거름통으로도 해결이 안돼 일반 쓰레기로 버리고 있던 음식물들을 분해되는 비닐봉지로 싸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분리,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애써 위안을 삼는다.
3. 벌새가 보이질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집에는 빨간 칸나가 눈부시게 핀다.
동네의 이웃에게서 분양받은 열댓 개의 구근으로 시작된 칸나는 뒷덱을 빙둘러서 피기도 하고 옆 벽면에 줄지어 피기도 하고 마당 한 귀퉁이에 뭉터기로 피어있기도 한다.
올해엔 북클럽 멤버들에게까지 구근을 분양해서 그들의 집 마당에서도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칸나는 풍성한 이파리뿐만이 아니라 선홍색의 빨간색 꽃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칸나의 아름다움은 그 꽃에 찾아드는 벌새들로 인해 완성된다.
늦은 오후나 이른 저녁 무렵 무심히 바깥을 바라보다 칸나꽃 사이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꿀을 빠는 초록색 벌새를 발견하면 내 마음은 작은 기쁨으로 두근거린다.
그 작은 몸집에 눈에 잡히지 않는 빠른 날갯짓으로 날아다니며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니며 꿀을 빠는 모습은 경이롭다.
내가 칸나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어쩌면 칸나가 벌새를 불러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올해는 벌새가 잘 보이질 않는다.
꽃이 피기 시작한 지 두 주가 다 되어가는데 어찌 된 노릇일까?
나는 나타나지 않는 벌새를 쫒느라 시간이 날 때마다 뒷덱을 바라보고 무리 지어 피어있는 뒷마당을 바라본다. 며칠 전 짧은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진 한 마리가 올해의 유일한 벌새였다.
불순한 날씨로 복숭아꽃이 떨어졌듯이 너무 춥거나 더운 날씨로 알들의 부화가 잘 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이곳의 날씨가 이미 벌새가 살아가기엔 너무 덥고 습해진 것일까?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몇 년째 칸나와 함께 여름 나기의 힘이 되어주던 존재가 사라지니 너무 서운하다.
아직은 풍성하게 칸나가 피어있으니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면 나타날까?
오늘도 나의 눈은 찾아오지 않는 벌새를 기다리느라 창문밖의 붉은 칸나꽃 사이를 헤매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