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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하바 Mar 30. 2022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

마흔의 내 얼굴을 제법 사랑하지만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다 거울을 본다.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는 광대뼈 주위가 거뭇거뭇하다. 마스크를 핑계로 그렇잖아도 무심했던 피부 관리에 더 소홀해져 버린 지 오래다. 맨 얼굴을 쓰다듬으며 '어휴, 얼굴 진짜 어떡하니. 주름에 기미에 보기 싫다. 너무 못생겨졌어.' 한숨처럼 내뱉는다. 여덟 살이 된 지금도, 뱃속에서의 그때처럼 거의 한 몸과 같이 붙어 있는 사랑스러운 꼬맹이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서 대꾸한다. 


"아냐, 엄마 예뻐. 내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제일 제일 예뻐." 

녹음테이프 재생하듯 나의 한숨 뒤에 자동으로 들려오는 아이의 사랑스러운 대답. 이대로 마무리되면 제법 아름다울 모녀간의 대화인데, 가끔 아이는 얄밉게 놀리듯 한 마디씩 덧붙인다. 

"화장했을 때는 예뻐. 히히." 


_


열네댓 살 무렵. 한창 살집이 오르고, 얼굴엔 여드름 투성이에 도수 높은 안경 뒤로 실제 크기의 반 정도로 줄어버린 눈. 진심으로 내 얼굴을 싫어했던 시기에도 엄마는 항상 '세상 제일 예쁜 내 딸'이라고 하셨다. 사춘기의 반항심으로 '엄마는 내 엄마니까 그렇지. 누가 봐도 돼지에 못 생겼잖아.' 빽 소리를 내지르곤 했다. 살을 찌우고, 여드름을 나게 한 것이 엄마도 아닌데. 


정작 스스로는 내 얼굴에 제법 자신감이 생겼던 대학생 때에야 - 물론 지금 와 사진을 보면 한 없이 촌스럽지만 - 오히려 엄마는 자신의 딸 얼굴에 대해 세상 누구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예쁜 코는 제발 좀 아빠 닮으라고 했더니 딱 반대로 태어났니. 그래도 눈이랑 입은 괜찮은 거 같아. 근데 넌 아무리 봐도 고상하고 우아~한 분위기는 어려울 거 같다. 그냥 귀여운 이미지로 가 보는 게 낫겠네." 이젠 엄마가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내가 좌절해서 땅굴 파고 들어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셨던 것 같다. 바꿔 말하자면 열네댓 살 때의 나는 나를 낳은 분이 보기에도 정말 못생겼었나 보다. 두루뭉술한 칭찬으로 다독거려 주어야 할 만큼. 


_


아이의 공치사가 아니더라도 사실 나는 마흔의 내 얼굴을 제법 좋아하는 편이다. 큰 눈에 단정하고 짙은 쌍꺼풀은 엄마의 지난 평가와는 다르게 제법 우아한 분위기를 잡아준다. 틈 날 때마다 콧대를 손으로 올려주어 예전만큼 뭉툭하지 않은 코도 얼굴 가운데서 균형이 잘 잡혔다. 콧구멍은 살짝 큰 편이지만,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커지는 때가 아니라면 그리 도드라지지 않으니 괜찮다. 입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인데, 아빠를 닮아 도톰한 입술은 꽤 예쁜 편이라 생각한다. 광대뼈가 살짝 도드라지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달걀형인 얼굴형도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은 사실 이목구비 이외의 것들이다. 이마의 잔주름, 코 아래서부터 이어지는 짙은 팔자주름, 기미와 주근깨, 갈수록 진해지는 결막모반. 그중 최악은 미간 사이의 깊은 주름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얼굴에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들은 좋아하고, 세월이 더해지며 '스스로 만든' 흔적들을 좋아하지 않는 셈이다. 마이너스 7 디옵터에 난시까지 가진 눈 때문에 찡그리고 보는 습관이 생겼고, 미간의 주름은 그 때문이다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나도 알고 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걱정이든 분노든 넘치도록 표현하고야 마는 나의 얼굴 근육들이 미간의 주름을 더욱 깊게 자리 잡게 했다는 것을. 


마흔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라고 했다. 이 문장 앞에 '남자는'이라는 주어가 붙었던가 붙지 않았던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립(而立)의 나이를 거쳐 이제 불혹(不惑). 내 마음은 아직 확고한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고, 세상 일에 너무나 쉽게 흔들려 옳지 못한 판단을 내리기 일쑤다. 그러니 아이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할 때 부끄러운 이유는 얼굴 때문이 아니라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기 때문일테다.


마흔의 내 얼굴을 좋아하는 것과, 책임을 지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옳은 방향으로 세워가야지. 세월의 흐름과 마음의 말들이 더하는 흔적들이 물려받은 얼굴 위로 아름답게 자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미간의 주름은 아마도 보톡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듯싶다. 대신 마음의 주름은 매 순간 정성 들여 곱게 다림질해가며 아름답게 늙어가야지.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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