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격리자라서요.
모두가 원하는 명절 집콕중입니다만
"나 진짜 코로나인가? 2차 접종했을 때랑 증상이 똑같아."
평소 그라면 이런 식의 전개가 당연했을 거다. 게으름을 부리고 부리다, 미루고 미루다 아내의 재촉에 못 이겨 간신히 검사 한 번 받으러 갈까 말까 하는. 그런데 '누울 수 있을 땐 앉지 않는다.'는 생활신조를 가진 그가 아침을 먹자마자 서둘러 검사를 받으러 다녀왔다. 다녀와서는 바로 다시 소파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마스크는 벗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무언가 느낌이 왔던지 방으로 들어가겠단다. 조금은 불완전한 형태였지만, 어쨌든 남편의 격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보통 검사 결과가 음성이면 이른 아침에서 오전 사이에 문자가 온다. 열 시가 가까워지는데 감감무소식이다. 밤새 불안함에 잠을 설쳤다는 남편은 결국 보건소로 전화를 걸었다. 굳게 닫힌 방문에 귀를 바짝 붙인 채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려 애를 쓴다. 남편에게 보이는 이런 관심 실로 오랜만이다. 통화가 길어진다. 아무래도 양성 같다. 내 얼굴에 어린 불안의 그림자를 아이도 읽었다.
"아빠 코로나래? 그럼 나 아빠랑 못 놀아? 나도 검사받아야 돼? 검사 무서운데..."
아빠 걱정은 뒷전이고 제 걱정이 우선인 아이를 보니 웃음이 났다. 허나 내가 아이를 탓할 계제는 아니었다. 남편 몸 상태도 걱정이고, 전 날 아이와 간식을 함께 먹었던 친구네도 걱정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걱정된 건 '몇 달 만인 지도 모를 만큼 오랜만에 운전을 해서', '코로나 검사 아프니까 절대 안 받을 거라는 아이를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으니까.
나의 긴장성 장 트러블은 유독 운전하기 직전이 가장 심하다. 하필 설 연휴라 문을 연 검사소도 많지가 않다. 게 중 운전해서 가기 편하고 주차도 쉬운 곳을 열심히 찾아냈다. 평소라면 출발하기 전 화장실만 몇 번을 들락거렸을 테지만, 역시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되나 보다. 하도 오랜만이라 우리 집 옆 오르막길조차 덜컹거리며 오르는 통에 아이는 뒤에서 덜덜 떨었지만 그래도 익숙한 길이라 걱정했던 것보다 쉬이 도착했다.
확진자의 동거인이라고 몇 번을 물었음에도 일반 대기줄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한참 후에야 분리시킨 검사소의 대응이라던지, 공동 격리자라면서 하루가 지나서야 안내 문자 하나에 형식적인 전화 한 통이 전부인 구청이라 던지는 여기서는 구구절절 언급하지 않기로 하자. 백신 2차 접종 후 90일이 지나지 않았거나, 3차 접종 완료자의 경우에는 재택치료 기간도 공동 격리 기간도 획기적으로 짧다는 것도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지만 그것도 일단 차치하기로 한다. 확진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데 '재택치료' 라면서 공동 격리자를 보호할 수 있는 - 혹은 보호하는 데 아주 약간의 도움이 될 법한 - 개인 보호구 세트조차 격리 4일 차인 지금까지 받지 못했다는 것도 미루어 두자.
여하간 지금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거다. 이제 여덟 살이 된 아이가 미접종자이기 때문에 공동 격리 기간이 내 격리기간보다 7일이나 더 많다는 것. 그리고 나는 1회만 더 받으면 되는 추가 검사가 아이는 2회라는 것. 졸업 전 남아있는 유치원 등원 기간의 3분의 2를 격리하느라 가지 못한다는 것. 혹여나 격리기간 중 추가 양성 판정이라도 받게 된다면 졸업식도 가지 못할 수 있다는 것.
아, 남편이 확진인데 아이 유치원 걱정만 하고 있다고 혹여나 욕할 분들을 위해 변명해 보자면 남편은 다행히 증상이 심각하지 않다. 검사만 받지 않았다면 그냥 감기인가 보다 하고 지나갔을 것 같다고 본인이 이야기할 정도니까. 물론 방 안에만 있어야 하니 답답하겠지만 쉬는 날이면 '아빠 놀아줘'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와 합법적으로 떨어져 있을 수 있고, 늦잠이고 낮잠이고 원하는 대로 자는 데다, 온종일 그 좋아하는 폰을 손에 달고 지낼 수 있으니 제법, 아니 꽤 만족스러운 재택치료 기간을 보내고 있다.
실로 온갖 불편함은 내가 겪고 있으니 남편이 답답함을 호소할만한 상황도 아니다.
우리 집은 화장실이 하나라 어쩔 수 없이 공간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한 번 남편이 나왔다 들어가면 부지런히 온갖 공간을 소독하는 건 내 몫이다. 마스크 때문에 음식 간 보기조차 힘들어도 세 끼 밥은 차려 먹이고 치워야 하며, 아빠 놀아줘 대신 '엄마 놀아줘'를 외치는 아이를 케어하는 것도 내 일이다. 일상적인 케어 외에 추가로 '아빠랑 놀고 싶은데..... 마스크 안 쓰고 싶은데.... 검사 또 받기 싫은데.... 유치원 가고 싶은데.... 외가댁 가있는 동생 부러워....' 등등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징징거릴 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을 케어하는 것도 추가된 일이다.
급하게 방을 분리시킨 탓에 안방과 안방 베란다 물건들 중 필요한 것들을 그때 그때 거실에 쌓아두게 되었고, 쓰레기도 버릴 수 없으니 집은 점점 엉망이 되어간다. 멀쩡한 식탁을 두고 아이방에 상을 펴고 앉아 공부를 하고 밥을 먹다 원래 약한 무릎에 이상 신호가 왔다. 무릎에는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하도 씻고 소독을 해서 다 터버린 손에는 자기 전에야 간신히 한 번 핸드크림을 발라준다. 아이가 자고 있는 방에 불을 켤 수도 없고, 거실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도 없으니 육퇴 후 맥주 한 잔의 즐거움도 누릴 수가 없다.
"그래도 명절에 시댁 안 가는 건 좋지 않아? 남편이 선물해 준 거 아냐?" 친구가 농담처럼 묻는다. 두 번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 대답은 "아니"였다. 솔직히 은근히 한 번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명절 시가에서의 노동은 매년 겪어도 즐겁거나 익숙해지는 일은 아니니까. 특히나 이번 설에는 코로나 때문에 벌써 3년째 명절에 친정엘 못 갔다 슬쩍 어머니께 돌려 말씀드렸더니 '상황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TV에서 봤는데 어떤 사람은 15년째 친정에 못 갔다더라'는 답을 받고는 정말 할 수만 있다면 가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하루 이틀 불편하고 말지 이건 짧게 2주, 길면 어찌 될지 모르는 불편함이다.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위의 불편함들에도 불구하고 이만하길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와 내가 음성이든 양성이든 같은 결과를 받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둘 중 누가 양성이었든 지금보다 몇 배는 골치 아픈 상황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이틀 후에 있을 추가 검사에서도 부디 음성으로 지나가기를. 남편도 여기서 더 심해지지 않고 이대로 지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