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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운 Aug 14. 2021

불가해한 사랑

마이클 래드포드, <일 포스티노>(1996)

8월 14일


<일 포스티노>는 영화 <씨네마 천국>(1988)을 거듭 떠오르게 한다. 동시대 이탈리아 영화라는 유사성 외에 이 두 편의 영화는 각각 인물들의 삶에 왜 시와 영화가 찾아와야만 했는지를 보여주는 매체에 대한 헌사가 있다. <씨네마 천국>이 영화가 왜 삶의 소중한 기억을 재현하는 매체인지를 보여줬다면, <일 포스티노>는 왜 자신의 목소리를 시의 언어, 즉 '은유'로 낼 수밖에 없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시에 무지했던 우편배달부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시)는 세계적인 시인 네루다(필립 느와레)의 우편물을 담당하면서 그와 교우하게 된다. 그 후 마리오는 술집 주인 베아트리체(마리아 그라치아 쿠치노타)와 사랑에 빠지면서 시를 창작하고 싶은 욕망에 빠지게 되고, 네루다에게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시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워 간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으므로 아름답다.'라는 다소 뻔한 말이 영화라는 재현 매체를 만나 아름다운 체험으로 되살아난다.


영화는 주로 클로즈업과 두 인물만을 프레임에 두는 가둔 화면을 주로 사용하는데, 때때로 중심인물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딥포커스로 인물을 찍는 순간들이 있다. 그 화면은 마치 인물이 풍경 속에 속해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길에서 소를 끌고 가는 행인, 공을 차는 아이들,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 그리고 가게 앞 항구와 절벽 바다 등 마을의 정경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이 장면들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이 있다. 왜 하필 그날, 그곳에 마리오와 베아트리체를 만났는가. 그 공간 그 순간에 하필이면 네가 있었다는 우연. 사랑이 쉽게 간과하는, 은유가 아니고서는 표현하기 힘든 우연의 연쇄가 그 장면들에 있다. 이런 우연들이 일상의 풍경을 만나 불가해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다. 하지만 간혹 어떤 사랑은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에 빠진 뒤 이유를 찾기도 하고,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 나타나도 여전히 현재의 사랑을 지속하기도 한다. 인류는 여전히 사랑을 정확히 정의하지 못했다. 사랑은 불가해하다. 사랑이 불가해하다면 사랑의 순간들을 적확히 언어로 지시한다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마리오처럼 상대방에게 사랑을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시란 그 마음들을 너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간절함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더 나아가 그 간절함을 특별한 당신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은어가 메타포가 아닐까. <일 포스티노>는 이런 질문들을 영상이라는 영화의 언어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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