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낙지 프린스다

2020 한식 문화 공모전 by 포그니

by 포그니pogni
(좌) 낙지를 원 없이 먹었던 어머니의 가게, 이젠 다른 식당으로 바뀌었다. / (우) 부산에서 처음 먹었던 '낙곱새' 요리



나는 낙지 프린스다.


월드컵으로 뒤집어졌던 2002년, 나의 어머니는 그해 추운 겨울날 서울 상도동에서 '뻘낙지'란 이름으로 식당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이때부터 원 없이 낙지를 먹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2015년 어느 봄날, 이제 낙지는 돈을 내고 사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됐다. 1년 동안 카자흐스탄에서 교환학생 및 국제 인턴을 하면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엄마가 만들어준 낙지였다. 하지만 역사에 흥망성쇠가 있듯이 식당도 '쇠'하여 결국 우리 어머니는 문을 닫고 충청도로 가게 됐다. 물론 그곳에서도 식당을 하시면서 특유의 손맛으로 많은 손님들을 사로잡고 있지만, 낙지는 아니다. 명절 때 놀러 가도 이젠 맛보기 힘든 음식, 낙지.


나는 낙지 프린스다.


낙지 덕분에 남에게 베푸는 즐거움을 알았다. 초등학교 때 제일 부러운 친구가 문방구를 운영하는 부모님을 둔 친구였다. 그런데 머리가 좀 더 크고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이유가 되니 식당을 하는 어머님을 둔 나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한 번씩 친구들을 우리 가게에 초대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낙지 요리를 맛있게 얻어먹고 갔는데, 먹고 식당 문 앞으로 나오면 이날은 마치 내가 보스가 된 느낌이었다. 어머니의 음식을 맛있게 먹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니 이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이게 다 낙지 덕분이다. 낙지가 아니었으면 어찌 돈도 없는 어린애가 내가 친구 여러 명을 불러 이렇게 대접할 수 있었을 것인가! 낙지 덕분에 내 성격이 둥글둥글 해졌고, 성격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것 같다. 그리고 학생 때는 공부한다고 일손을 안 돕고, 노는 날에는 약속 있다고 안 돕고. 참 못난 아들이었지만 낙지를 통해 이렇게 베푸는 법을 알려준 어머니께 감사하다.


나는 낙지 프린스다.


여러 별명이 있었지만, 이 별명을 친구들이 작명해줬을 때가 제일 좋았다. 나를 형용하는 단어 중에서 이처럼 찰떡같이 맞는 별명은 없었다. 이는 나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종종 부모님이 식당을 하시면 부끄러워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것이겠지. 부모님이 큰 사업 혹은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나는 학년이 올라가서 반이 바뀌거나, 대학교 다닐 때 새로운 동아리에 가입해서 내 소개를 할 때 당당하게 말했다.


"제 별명은 낙지 프린스이고요, 어머님은 상도동에서 낙지 가게를 하십니다."


2016년 1월, 나는 경남에 있는 회사에 취직이 되어 서울에서 내려와 부산에서 살게 됐다. 부산의 음식은 서울과는 다른 부분이 꽤 있었다. 예를 들어, 생선 매운탕과 추어탕에 '산초' 가루를 뿌린다던가 순대를 시키면 소금 대신 쌈장과 생양파가 나왔다. 낙지 요리도 그중에 하나이다. 처음으로 '개미집'이란 맛집을 갔을 때, 나는 낙지볶음을 시켰다. 그런데 낙지전골처럼 보이는 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정말 뭔가 싶었다. 당황한 내 표정을 본 부산 토박이 지인은 국물을 졸여서 밥에 비벼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아는 낙지볶음은 졸여 먹는 게 아니라 볶아서 데친 콩나물이란 같이 먹는 것인데 말이다. 물론 맛이 없단 얘기는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이곳에 가서 아내와 한 끼를 해결한다. 하지만 뭔가 100% 채워지지 않는 것은 맞다. 왜냐하면 나는 '낙지 프린스'였으니까. 가끔 회사일에 힘들고 지칠 때면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낙지 요리가 먹고 싶다.


※ 최소 7년 전 사진으로써 사진 화질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먹었던 요리, 철판 위에서 익혀먹는 '낙지 삼겹살'



"첫째 마당, 낙지 삼겹살"



나는 낙지 프린스다.


나를 프린스로 만들어준 음식, 낙지 삼겹살이다. 학생 때, 친구들을 우리 가게로 데리고 올 때마다 십중팔구 먹였던 음식이 낙지 삼겹살이다. 특히 서울에서 낙지 요리는 학생 때는 꽤 고가 음식이었다. 나는 일말의 양심은 있었다. 친구들을 불러 공짜로 밥을 먹이는 것에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개중에 저렴한 편이면서도 큰 크기의 낙지와 호불호가 없는 삼겹살이 들어가사 생색내기 안성맞춤인 낙지 삼겹살을 주로 먹었다. 이걸 다 먹고 나서 이 양념에 김치와 김을 추가한 볶음밥은 필수. 친구들과 도대체 이 요리는 몇 번을 먹었는지 셀 수 조차 없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명품으로 'FLEX'를 한다. 하지만, 나는 낙지로 'FLEX'를 했다.


낙지 삼겹살은 손님들에게도 스테디셀러였는데, 바로 양념이 그 비법이었던 것 같다. 매운 듯하면서도 엄청 맵지는 않고, 조미료를 쓰지 않았지만 조미료가 들어간 듯 계속 국물에 밥을 비벼 먹고 싶게 만드는 어머니 음식 솜씨의 집합체, 양념. 이 양념과 어우러져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들어간 재료의 식감이다. 아삭한 콩나물과 쫄깃쫄깃한 삼겹살, 그리고 말랑말랑한 낙지를 마치 삼합처럼 한 젓가락에 모두 집어 먹었을 때에 그 느낌. 내가 좋아하는 모든 식감이 입 안에서 춤을 추고 있다. 어찌 보면 홍어 삼합과도 유사한 식감이지만 훨씬 부드럽다. 왜냐하면 낙지는 뼈가 없으니까. 유명한 낙지 맛집을 가더라도 비슷한 이름의 메뉴는 있지만, 맛까지 비슷한 느낌의 요리는 찾을 수 없었다. 아들이 먹을 음식이니까 최고의 낙지, 콩나물, 삼겹살 등 최상의 식재료가 듬뿍 들어가 있었으리라.



기본 중에 기본, 입 안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좋은 '산 낙지회'



"둘째 마당, 산낙지회"



나는 낙지 프린스다.


낙지 프린스에게 산낙지는 교양 필수과목이다. 내 아내는 낙지 요리를 좋아하지만 산낙지는 못 먹는다. 한 번씩 산낙지를 컨트롤하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놀라곤 한다. 예를 들어, 2년 전 어느 여름날 아내를 위해 닭백숙에 산낙지와 활전복을 넣은 음식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거리낌 없이 맨손으로 산낙지를 집어 싱크대에서 박박 세척하고 그대로 백숙에 투하하는 내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꿈틀꿈틀 산채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징그럽다면서. 하지만 나는 낙지 프린스가 아니었던가! 접시 밖으로 나가고자 움직이는 낙지를 볼 때면 너무 사랑스럽다. 그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낙지가 꿈틀거리며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입 안에 퍼지는 것이 상상된다. 얼마 전에도 나는 태종대 조개구이 식당에서 서비스로 나온 산낙지를 게 눈 감추듯이 1분도 안 돼서 한 마리를 다 먹었다. 산낙지는 사랑이다.


나는 낙지 프린스다.


낙지 프린스 시절 산낙지는 사치재가 아닌 보통재였다. 밤늦게 가끔 어머니가 가게에서 산낙지를 가져올 때가 있었다. 너무 자주 먹어서 가끔은 산낙지를 안 먹고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죽이고 시원한 국물을 위해 큰 거 한 마리를 통째로 라면에 넣어 먹었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이 아까운 놈을 라면 따위에 부재료로 넣어서 먹을 수 있을까? 그땐 그랬다. 낙지는 돈 주고 사 먹는 식자재가 아니었다. 이게 다 어머니가 상도동 뻘낙지를 개업해서 오래 유지하였기에 누렸던 호사였다.



(좌) 내가 알던 서울식 '낙지볶음' / (우) 소주와 마시면 일품인 '낙지초무침'



"셋째 마당, 낙지볶음과 낙지초무침"



나는 낙지 프린스다.


내가 아는 낙지볶음은 부산 낙지볶음처럼 국물을 졸이는 것이 아닌 낙지를 웍(Wok)에 아주 매콤한 양념과 볶아 밥에 얹어 먹는 것이다. 다른 낙지 전문점과 차별화된 어머니만에 비법은 양념 없이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고 찬물로 식힌 콩나물을 낙지볶음과 함께 먹는 것이었다. 이보다 아삭아삭하게 입에서 연주되는 악기는 없을 것이다. 식감뿐만 아니라 낙지의 매운맛을 중화시키는 역할도 했던 일석이조의 비법이었다. 지인들과 낙지볶음으로 유명한 종로 무교동 골목에서도 낙지를 먹어봤지만 맵기만 맵지 어머니의 맛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계속 부산에 거주를 하는 이상 언젠가 태어날 2세는 낙지볶음을 국물에 졸여서 먹는 음식으로 알고 있겠지. 이 맛을 알려주고 싶은데 왠지 모르게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낙지 프린스다.


어머니는 음식 식감의 달인이다. 모든 낙지 요리가 아삭한 식감의 부재료와 어우러져 환상의 하모니를 자아낸다. 부드러운 낙지와 다른 부재료가 입 안에서 춤을 춘다. 어렸을 땐 몰랐다. 왜냐하면 이런 어머니의 음식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콩나물 말고 아삭아삭한 마늘종과 함께 무친 낙지초무침은 또 다른 별미다. 볶음과 철판요리를 넘어 초무침이 맛있게 느껴진다면 이제 당신은 프로 낙지 먹방러 중상위 단계에 진입한 사람이다. 그리고 소주와 함께 먹으면 취하지도 않고 배도 부르지 않은 마성의 음식이다. 젊은 청년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와서 이것만 먹으면 절대 배가 안 찬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낙지 삼겹살을 시키고 맛보기로 조금만 무쳐 달라고 조르곤 했다. 희한하게 정말 맛보기 힘든 요리였는데, 한 번씩 집에서 큰 낙지 여러 마리를 통으로 무쳐서 야식으로 만들어 주실 때면 그보다 행복할 수는 없었다.



(좌) 최고급 낙지 요리 '연포탕' / (우) 연포탕을 먹은 후, 식사로 먹는 '매생이죽'



"넷째 마당, 연포탕 그리고 매생이죽"



나는 낙지 프린스다.


어지간한 낙지 마니아가 아닌 이상 연포탕이란 음식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낙지 요리의 꽃, 연포탕. 맑은 육수에 산낙지를 그대로 넣어 샤부샤부처럼 살짝 익혀 먹는 음식. 연포탕에 들어가는 낙지는 크면 안 된다. 왜냐하면 너무 큰 낙지는 질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요리를 통해 최상급 낙지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물론 환경오염 탓에 최상급 낙지를 구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서 대체로 이 음식을 먹을 때면 그래도 크기가 큰 낙지가 들어갔다. 처음 연포탕을 먹던 날 무와 대파, 청양고추를 기본 베이스로 우려낸 육수를 한 술 떠먹는 순간 온몸에서 전율을 느꼈다. 그때까지 나는 낙지란 음식은 무조건 빨갛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요리에서 낙지를 익힐 때 조심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낙지 '머리'. 산낙지가 그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먹물통 또한 같이 들어가 있다. 머리를 자를 때 가위로 한가운데를 자르는 순간, 맑은 국물은 그대로 시커멓게 변한다. 하지만 새까만 국물도 그 풍미는 여전하다. 과연 육수의 비법은 무엇일까? 오직 어머니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나는 낙지 프린스다.


낙지를 다 건져 먹었으면 이제 식사를 해야지. 다른 요리는 볶음밥이 나오지만 이 음식을 먹을 땐 연포탕 국물 남은 것을 베이스로 매생이죽을 끓인다. 이 초록색의 정체 모를 비주얼에 많은 사람들이 먹길 꺼려한다. 뭐 초록색이 식욕을 돋우는 색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숟가락으로 한 입 뜨는 순간 이 죽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십중팔구는 그랬다. 가끔 내 친구들도 연포탕을 얻어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오히려 낙지보다 이게 더 맛있단 친구도 있었다. 이 맛에 빠진 것을 아는 어머니는 냉동실에 항시 매생이를 얼려놨었다. 이제 독립해서 냉동실에 매생이는 볼 수 없지만 가끔씩 TV에서 매생이를 볼 때면 어머니가 쑤어준 매생이죽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고 그립다.



현재 충청도 어머니 식당의 대표 메뉴, 황태 삼겹살



나는 낙지 프린스가 아니다.


이제 상도동 뻘낙지는 없다. 낙지 프린스도 옛 추억이 됐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없이 만들었던 낙지가 질렸는지 어머니는 더 이상 낙지 요리를 하지 않는다. 낙지를 보면 나를 키워낸 세월과 함께 힘들었던 일이 떠오르시는 것 같다. 난 낙지가 그립다. 하지만 더 이상 나는 어머니께 낙지 요리를 만들어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어머니 품속에 있는 캥거루 새끼가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진정한 어른이 됐다는 것이겠지. 진짜 어른이 됐지만 부산에 살며 가끔 낙지볶음을 먹을 때면 어머니의 손맛이 생각난다.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먹어볼 수 있을까?


나는 낙지 프린스가 아니다.


낙지 덕분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카자흐스탄이란 머나먼 땅까지 다녀올 수 있었고 나름대로 세계여행도 많이 다닐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존재다. 내 어머니는 경상도 남자같이 참 무뚝뚝하시다. 그래서 나도 어머니께 속마음을 거의 내비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젠간 말해야겠지. 어머니의 낙지 요리 덕택에 내가 이렇게까지 컸다고.


2020 한식 문화 공모전 by Pogni.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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