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번이나 실패한 사람이다. 수능, 회계사 시험, 취업까지. 그렇다면 나는 세 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에 시궁창 같은 인생은 살고 있을까? 정답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너무 행복하다. 인생에서 세 번의 실패는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한 발판의 원재료일 뿐이다. 나는 지금 도약하는 중이다.
[첫 번째 실패 : 대학 입시]
2007년 11월 15일,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고등학교 소재지 안산에서 수능을 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나는 직감했다. 이번 수능은 망했다고. 부모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항상 전교 최상위권에서 놀던 나는 연·고대는 기본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어떤 학과를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번 시험은 가채점을 할 여지 조차 없다고. 대학교 입시가 전부이던 시절 나는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연·고대가 밑에 대학교는 의미가 없던 시절, 여태껏 뒷바라지를 해주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안산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4호선 지하철 안의 공기가 무겁다.
수능 성적표 배포 후 어김없이 찾아온 담임선생님과의 진학 상담 시간.
"이번에 정시 원서 넣을 생각 하지 말고, 당장 재수할 생각 해."
내가 무슨 말을 할 틈새도 없이 선생님의 한 마디가 내 뼈를 때린다. 연·고대를 못 가서 본인의 성과에 마이너스가 되자 바로 태세가 달라진다. 나는 항상 최상위권에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한테 싫은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처음 듣는 싫은 소리가 재수하라니. 참 더럽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속상한데 위로도 없고 어머니 낙지 가게에서 돈 한 푼도 안 내고 35명을 데리고 와서 공짜로 밥도 먹었으면서 다짜고짜 재수하란다. 결과가 실패니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내가 싫었다. '진짜 재수할까?',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선생님의 말은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원서를 넣었다.
가군 :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부 (합격)
나군 :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추가 합격)
다군 : 경희대학교 관광학부 (합격)
그래도 나는 가, 나, 다군 세 군데 모두 합격을 했다. 고민이 됐다. 이 합격증을 버리고 다시 재수를 한다고 연·고대 이상 합격한다는 보장이 있을까? 결국 나는 서울시립대 세무학과로 진학하는 것을 선택했다. 등록금도 싸고 합격한 세 학교 중에서는 가장 좋았으니까.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싶었던 나는 전혀 다른 전공을 공부하게 됐다. 이렇게 수능을 망쳐서 내 진로는 세무사 혹은 회계사 합격으로 갑자기 바뀌게 됐다. 꼭 시험에 붙어서 반전된 인생을 살아볼 것이라고.
[두 번째 실패 : 회계사 시험]
2014년 2월 23일 오후 5시가 넘어 추운 겨울날 나는 왕십리에 있는 한양대학교 캠퍼스를 터벅터벅 걷고 있다. 나는 또 실패했다. '12년에 복학하여 '13년도에는 1년을 통째로 휴학을 하면서 준비했던 공인회계사 시험. 나는 1차 시험의 문턱도 넘어서질 못했다. 인정한다, 막판에 하반기 들어서 스스로 굉장히 루즈(Loose)해졌다는 걸. 수능과는 다르게 나는 이미 시험 치기 한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 떨어질 확률이 90%는 넘을 것 같다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더 부어도 모자랄 시기에 이미 나는 체념했다. 그래도 2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중간에 집안 사정을 생각하며 학원을 다니다가 독학으로 공부를 돌린 것이 큰 독이 됐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취업 준비를 해야 하나? 아니 4월에 있을 세무사 1차 시험을 볼까? 회계사 시험 말고 나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남들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취업 스펙을 쌓는다는데 26살인 내가 이제부터 시작해서 따라갈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14년 1학기 복학 신청을 하고 나는 결심했다. 시험은 접고 취업하자고. 당시 대학교 동기들 사이에선 회계사 및 세무사 시험이 마치 대입 수능처럼 인생의 전부였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는 실패한 패배자였겠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솔직히 20대의 끝이 보여가는 시점에서 최소 1년을 더 시험에 시간을 쏟는 것 자체에 위험이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취업을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지? 아마도 외국어 중에서도 영어 구사 능력이지 않을까? 그렇게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개발도상국 국가 대상의 '국제 개발 협력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나는 이 프로그램 신청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 '14년 국제 여름학교 International Buddy가 되어 직접 부딪히며 영어로 소통을 하며 친구를 만들었다. 그렇게 프로그램 합격자로 선정되어 장학금을 받아 '카자흐스탄에서 교환학생 1학기 + 한국무역보험공사(K-SURE) 1학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현재까지 세계 25개국을 여행을 하게 됐으며, 여행 작가가 되기 위한 자양분을 쌓을 수 있었다. 이때 나는 깨달았다. 실패 뒤에는 또 다른 기회가 숨어 있을 것이란 걸. 실패했다고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세 번째 실패 : 취업]
2015년 12월, 그 해 겨울은 너무 추웠다. 같은 해 5월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오고 본격적으로 취업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이마트, 한솔 로지스틱스, 동화기업', 11월에 최종 면접까지 갔었던 세 개의 대기업이다. 나는 다 떨어졌다. 12월에 그 결과를 통보받았는데,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최종 면접에서 다 떨어진 것일까? 그리고 문과를 전공해서 요즘 세상에 취업하기란 정말 어렵단 사실을 느꼈다. 그렇게 큰 대기업에서 많아야 한 팀에 1명을 뽑으면 다행이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한솔 기업이었는데, 재경팀 지원자가 서류만 150명이 넘었고 그중에서 나는 최종 4인이 참여한 면접까지 갔는데 결국 1명만 뽑았다는 것이다. 그 해 겨울 서울에 있는 빌딩 숲에서 내 자리 하나 없단 사실을 깨닫자 문틈 사이로 칼바람이 더욱 세차게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예전에 서류에서 탈락시켰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하루에 실무진·최종 면접을 한 번에 치를 건데 올 수 있겠냐고. 그렇게 나는 '16년 1월 경상남도에 있는 대기업 규모의 자동차 부품회사에 출근하게 됐다. 그렇지만, 민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B2B 기업이라서 인지도가 별로 없다. 나도 취업 준비를 하다가 연봉만 보고 지원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 와보니 울산을 제외한 부산·경남지역에서는 가장 큰 회사였다. 하지만, 취업에 성공했어도 여전히 나는 이 또한 실패라고 생각한다. 내가 졸업한 학교와 스펙을 본다면 사실 나는 훨씬 큰 대기업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까지도 계속 다니고 있지만 만약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중간에 분명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를 알아봤을 게 분명하다. '16년부터 '18년까지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8시에 퇴근하면 빨리 퇴근한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길렀던 멧집이 있어서 쉽게 쓰러지지 않는 돌덩이가 된 것 같다.
나는 세 번이나 실패한 사람이다. 누군가 내 실패를 본다면 실패가 아닌데 왜 실패라고 정의하냐고 물어볼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내 기준에서 봤을 때는 무조건 실패다. 실패했을 때의 좌절과 두려움이란 그 기분을 솔직하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세상에 모든 죄를 내가 지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만 좌절하고 슬퍼하고 다시 일어섰다. 실패했다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가만히 있으면 정말 무너진다. 이에 굴하지 않고 다른 기회를 찾아봐야 한다. 그러면 분명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나는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첫 번째 실패를 통해 '제대 후 반값 등록금으로 장학금까지 받으며 거의 무상으로 졸업'할 수 있었고, 두 번째 실패를 통해서는 '카자흐스탄 경험을 통해 영어 실력도 배양하고 세계 25개국 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었으며, 세 번째 실패를 통해서는 서울 촌놈이 부산으로 내려와 '지금의 아내를 인도 출장 가는 길에 공항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까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회사에서도 충분히 자리 잡았으며, 이렇게 작가가 되기 위한 글도 쓰고 있다.
나는 행복하다. 실패를 했을 땐 실패를 했던 사건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세상의 전부는 아니었다. 만약에 내가 실패 없이 모든 것을 성공하고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면 되게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지금의 단단한 내가 있고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이라고.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