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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Aug 20. 2023

여름날의 오후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

 습한 장마가 많은 비를 내렸다. 비는 사납게 내렸고 태풍과 합치면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무덥고 습한 공기를 품고 여름이 절정을 향해갔다. 나는 잠시 방향을 잃어버린 새처럼 두리번거렸다. 이 더위 때문에 지친 것일까. 제자리를 맴돌았고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 진통제를 맞은 사람처럼 나른하게 널브러졌다. 많은 꿈을 꾸었고 그때마다 잠에서 깼다.


 에드워드 호퍼와 알폰스 무하의 전시회를 보기 위해 서울로 갔다. 홀로 기차를 타고 차창으로 비켜서는 마을과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차를 타면 뭔가 새로울 거란 기대를 했는데 풍경은 새롭지도, 기분은 낯설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가를 보냈다. 휴가 전에 사둔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들었고 밤에는 왓차(watcha)에서 오래된 영화를 봤다. 다음 날도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아서 좋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좋았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없어서 좋았다. 나에게 좀 더 다가가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이 여름이, 더위가 그대로 머물러도 좋을 것 같았다.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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