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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Jan 13. 2024

2. 로마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

 시차적응이 덜된 탓에 조금 일찍 일어났다. 밤이 긴 탓도 있다. 오후 다섯 시경부터 어두워져서 오전 일곱 시가 넘어야 해가 떴다. 다섯 시 반에 깨는 바람에 오늘 일정을 살펴봤다. 로마와 바티칸 시티를 가는 오늘은 여유롭다고 했다. 육칠팔(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로 움직인다고 인솔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커튼 사이로 어둠에 싸인 길을 비추고 있는 노란 가로등을 보자 그 길을 따라 시내로 갔던 어젯밤이 떠올랐다. 토마토 파스타와 돼지고기 요리에 레드와인을 곁들여 모녀가 함께 온 조와 겸상을 했다. 지중해의 파란 물결과 햇살, 카프리섬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고 절벽 위에 세워진 저택과 마을에 운집해 있는 집들이 조화롭다는 말을 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산만하지 않은 이유가 집들의 색상 때문일 거라고 딸이 얘기를 했고 나는 그 말에 동감했다. 레드와인에 살짝 취한 나는 호텔 밖으로 나왔다. 

 이른 시간이지만 거리에는 인적이 없었다. 노란 가로등이 수은등처럼 은근하게 검은 돌이 깔린 도로를 비추고 있었다. 가로등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벽면에 작은 창문이 붙어있는 중세풍의 건물이 보였다. 누런 빛깔의 벽면은 불빛에 더 바랜 듯 보였다. 벽면이 벗겨진 곳도 몇 군데 눈에 띄었지만 보수한 흔적은 없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좁은 느낌이었지만 답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동차가 교행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좁은 골목길을 나오자 광장이 나타났다. 불 켜진 상점들도 있었는데 유난히 밝은 곳에서는 면도하는 남자가 있었다. 이발소였다. 광장 가운데로 오자 동상이 보이고 앞쪽에 분수대가 있었다. 


 밤이라 그런지 광장에는 사람이 없었고 가로등의 노란 불빛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보니 파라솔 밑에 앉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며 떠들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담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피워댔다. 대화를 하거나 길을 걸으며 피웠고 심지어 유모차를 끌고 가면서도 피운다고 했다. 정해진 장소에서 피우려고 노력하는 우리네 인심과는 달랐다. 특히 바르(bar) 입구는 담배 피우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이방인처럼 어색하게 광장을 배회하다 취기가 올라 아래로 내려가는 층계에 앉아 계단과 길로 연결된 오래된 마을을 바라봤다. 마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건너편 능선까지 집들이 보였고 불빛이 아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낯설지만 익숙한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후 어둠 속에는 스무 살의 내가 보였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 그해 겨울 나는 대학에 떨어졌다. 시골로 내려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두워지면 저수지에 가서 앉아 있었다. 봄이 오자 친구들은 학교에 가고 돈을 벌러 나갔다. 나는 여전히 어두워지면 저수지로 갔다. `

 8시에 호텔 로비로 나가자 일행들이 캐리어를 곁에 끼고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제일 늦게 나온 것 같았다. 버스는 로마로 향했다. 마이크를 잡은 인솔자는 우리가 투숙한 호텔 부근에는 유명한 산이 있어 주말에는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 빈다고 했다. 이탈리아 지도는 가죽부츠처럼 생긴 반도 형태인데 우리나라와 같이 남북으로 길어서 도로도 그렇게 발달했고 지형도 산악지형으로 비슷하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즐기는 여가활동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이곳의 지형은 우리와는 달랐다. 우리는 눈만 돌리면 산이 보이지 않던가. 국토의 70~80%가 산으로 구성된 나라가 아닌가.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자 풍경이 바뀌었다. 나폴리인근의 남부에서 보이던 상록 활엽수에서 좀 더 깔끔해 보이는 수종으로 바뀌고 있었다. 우산 소나무가 자주 눈에 띄었다. 로마로 갈수록 이탈리아 포플러가 줄지어 늘어선 길도 보이고 소나무 숲과 고대에 만들어진 수로교가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냈다.  


인솔자는 로마에 대해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500년 정도 된 건물은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고 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공존하는 로마는 시간이 멈춘 도시라고 했다. 하지만 고대 로마의 유적지에서부터 중세 르네상스까지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수많은 영화가 탄생했지만 `로마의 휴일`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촬영지였던 `스페인 광장의 계단`과 `트레비 분수``진실의 입`은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며 로마가 왜 로마인지는 직접 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로마에 도착하자 맨 처음 나는 플라타너스에 반했다. 그리고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에 매료됐다. 플라타너스는 테베레 강을 따라가기도 했고 검은 돌이 깔린 도로의 가로수로도 있었다. 호박잎처럼 넓은 잎을 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플라타너스는 건장하고 실했다. 내가 반한 것은 플라타너스의 수형 때문이었다. 외상을 입지 않고 이처럼 자유롭게 자라는 나무를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인솔자는 이탈리아의 인본주의를 자주 언급했었다. 그리고 국민들 정서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이 깔려있다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니 나무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알 것도 같았다. 하찮은 식물도 인정하는 그들의 생명존중의 자세를 생각하니 슬며시 부끄러움이 일었다.


 (바티칸 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화덕피자를 먹고 가는 것이 순서라고 했다. 인솔자를 따라가자 이미 준비해 둔 테이블에 곧이어 피자가 나왔다. 피자는 도우가 얇고 토핑은 단출해서 담백했지만 짭짤했다. 일행 중 육십대로 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커플이 있었는데 살집이 좋은 아들은 먹성도 좋아 보였다. 그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피클을 병 채 꺼내놓고 썰어 먹으면서 피자를 먹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머쓱해하면서 말했다.

" 이탈리아에서 피자에 케첩 뿌려서 사진 찍어 보낸다고 친구들에게 말해놨는데, , , "  

식사가 끝나거나 버스가 휴게실에 들르면 그는 어머니와 함께 담배를 피웠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를 방문한다고 웃음 띤 얼굴로 인솔자가 얘기하면서 여름에는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우리는 운이 좋아서 빨리 입장할 수 있다고 했다. (바티칸 시국)의 성벽이 절벽처럼 가파르다. 성벽을 올려다보니 문득 고대 때부터 이어졌을 전쟁이 떠올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성벽을 타고 올랐을까. 그리고 밑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쟁취를 위해 서로 죽이고 죽여야 했던 인류의 역사가 잠시 기다리는 순간 스치듯 지나갔다. 성벽 안의 우산 소나무가 경비를 서는 로마병사처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바티칸 시국)은 나라 전체가 박물관인 나라였다. `라오콘 군상`을 비롯한 수많은 조각품을 만났고, 테피스트리와 유럽의 지도를 봤다. 브라만테의 `베드로성당`과 미켈란제로의 `피에타`와 솔방울정원의 큰 솔방울까지 눈길 가는 모든 곳이 `핫 플레이스`였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담았다. 나는 베드로 성당의 천장을 올려보며 감탄을 하다가 바닥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을 보고 닮은꼴을 찾으려고 신랑에서 측량으로 헤집고 다녔다. 대리석 마블링의 오묘함에 기하학적 도형의 형태로 바닥은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웠다. 한참을 돌다가 사람들이 슬쩍 빠진 틈에 바라본 성당 안은 인파로 가로막혔던 보행로가 드러나듯 실체를 보여 주었다. 웅장하고 화려하고 섬세하고 압도했다.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밖으로 나왔다. 배랑을 나오자 광장과 회랑이 보였는데 회랑이 팔을 벌린 모습으로 광장을 에워싼 것 같았다. 회랑기둥에 앉아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광장을 바라보았다. 광장의 중앙에는 바다 건너 이집트 신전 앞에 있어야 할 오벨리스크가 상형문자를 잊은 채 서있었다. 오벨리스크의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박혀있다. 그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서로가 서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즐거워한다. 하이힐을 신고 짧은 흰색 스커트에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는 한쪽 발을 구부려 모델처럼 포즈를 취한다. 애인인 듯한 남자는 사진을 찍으며 무슨 말을 하는지 한 손을 까딱이면서 서서히 움직인다. 사람들은 순간순간 집중하고 다시 흐드러지듯 뒤섞였다. 단체로 모여서 포즈를 취하고 다른 이를 배려해 빠져나가며 조심스러워한다. 갑자기 성 베드로 성당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첫 번째 종소리에 환기되는 느낌이지만 이내 종소리는 군중들의 웃음소리에 묻힌다. 종소리는 계속되지만 언제 왔는지 옆자리에 앉은 여자애들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누굴 만난 건지 웃음소리는 더 커져 간다. 분수대가 물을 뿜어 올리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새 두 마리가 두리번거리다 물을 마신다. 나는 분수대 곁을 지나 군중 속으로 들어간다. 작은 울타리 같은 출구가 보이고 바닥에 선이 그어져 있다. 그 선을 넘으면 다시 로마다.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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