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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연생 Aug 05. 2020

배스킨라빈스 처음 갔을 때, 기억나시나요

그때 뭘 느끼셨나요?

 배스킨라빈스의 인기는 어제오늘의 날이 아니다. 하지만 건강을 중요시하는 우리 가정 분위기와 여러 사정 상 배스킨라빈스를 처음 먹어 본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처음 배스킨라빈스 매장을 방문했을 때가 떠오른다. 집 바로 앞 사거리의 코너를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는 그 매장은 당시 현재 볼 수 있는, 31의 숫자를 가운데에 강조한 로고로 바꾼지 얼마 되지 않았다 (기억의 조작이 있을 수 있다). 어쨌거나 더운 여름날 들어간 매장은 지나치게 시원했고 한낮이라 손님은 없었으며 검은색과 흰색 다이아몬드로 어지럽게, 마치 예술작품과 같은 느낌을 주는 바닥 타일이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그 브랜드가 곧잘 그렇듯이3명의 알바생이 있었던 것 같고 손님이 없을 시각이라 안 그래도 처음 가는 장소의 두려움에 세 명의 이목을 받는 것만 같아 위축되기도 했다.

 차가운 것은 늘 조금 먹는 편이라(그렇지 않더라도 항상 소식하는 편) 가장 작은 사이즈로 주문했다 .한참을 둘러보고 나서야 맛을 골랐다. 진짜 인상깊었던 것은 이제부터다. 아마 이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기억이 없을지도 모른다.

 맛을 주문하자 아이스크림 쇼케이스의 둥근 부분이 휙 돌아가면서 알바생 쪽의 문이 열렸고, 거대한 스쿱이 거대한 아이스크림 드럼통에 가 닿았다. 제일 충격이었던 것은 알바생이 몸을 쑥 집어넣어 아이스크림을 힘겹게 긁어모아 떠 넣던 장면이었다. 이단으로 되어 있는 드럼통의 배열 중 그때는 또 하필 나에게 가까운 쪽의 맛을 택해서 그 정도는 더 심했다.

 그때 나는 마치 내가 이 사람을 힘든 상황에 몰아넣은 것만 같았다. 끙끙대며 아이스크림을 담으면서 그 얼굴이나 표정은 볼 수 없어 나의 미안한 감정이 표현되지 못해 답답함과 안절부절함은 더 심했다. 내가 (그렇게, 엄청나게 먹고 싶어하는 것도 아닌데) 나에게 이목을 집중하게 하고, 오랜 시간 맛을 고르는 나를 기다리게 하고, 마침내는 특이하게 생긴 전용도구(스쿱)로 한참을 끙끙대며 고생하게 만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서는 개인적인 미안함의 감정을 넘어, 굳이 아이스크림을 이렇게 남을 힘들게 하면서 먹어야 하는지, 엄청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브랜드인데 이 사람은 그걸 다 견뎌내는 것인지, 힘들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경험하는 매장이었고 분위기도 뭔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인테리어에 알바생은 세 명이고 둥글게 빙-글 돌아가는 쇼케이스에 이런 경험까지, 그리고 통유리창 너머의 사람들은 쏟아지는 햇살과 더운 날씨에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시원하기 그지없는 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마치 환상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배스킨라빈스라는 말만 들어도 항상 이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이제는 파인트도 먹어보고(아직도 나는 파인트를 사서 둘이 마주 앉아 앉은 자리에서 다 먹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식사량을 보유하고 있다. 제일 작은 사이즈 하나 다 먹기도 힘들다.) 어느 정도 메뉴에도 익숙해졌다고 할까. 그러다가 얼마 전에 알고리즘을 타고 유튜브에서 어느 홈플러스 매장 안에 있는 배스킨라빈스의 젊은 점장이 찍은 브이로그를 보게 되었다. 타임랩스처럼 빨리 돌리는 영상 속에서도 주문을 받고, 아이스크림을 담고, 라떼를 만들고, 드럼통을 세척하는 등의 일련의 활동들이 정말이지 숙련된 손기술이 인상적이셨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브이로그였다. 그러다가 본인이 경험하고 들은, 일하면서 발생한 민원들에 관련한 영상을 봤는데 세상에. 본인이 반 이상 퍼 먹어놓고 덜 담아줬다는 것은 예삿일이고 손찌검까지 있었다. 중요한 것은 별로 화낼 만한 일이 아닌데 그랬다는 것이다.

 어느새 나는 세상살이의 힘듦에 대해 익숙해져 있었다. 나도 (객관적으로는 크게 힘든 일이 아니었겠지만) 그 동안 여러 힘든 일을 겪었고 매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겪는 힘듦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달까. 점장 분의 브이로그를 볼 때까지만 해도 나는 숙련된 노동에 ‘힐링’을 받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민원 영상을 보면서 다시금 내가 처음 배스킨라빈스 매장을 갔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는 왜 힘듦을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아이스크림을 소비하고 우리는 왜 그들의 서비스를 당연하다고 여기고, 나의 노동과 고난 역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우리는 왜 힘들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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