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각이 난다.
집에 누워 TV를 보다가 엄마가 들어오는 소리에 문을 바라보며 "엄마 왔어?" 하고 인사한 나에게 하얗게 질린 얼굴의 엄마가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 물을 한잔 가져다 달라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물을 가져다주고 말없이 엄마를 지켜보고 있는데 물을 다 마신 엄마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 루게릭이라는 병에 걸렸데. 오늘 병원에서 그렇게 말했어. 어떡하지 은영아?"
그때의 나는 루게릭이라는 병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유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도 해서 모를 리가 없었는데 멀게만 느껴졌던 그 병이 내 주변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에 좌절하기에 앞서 말없이 엄마를 끌어안았다. "내가 엄마 옆에 있을게. 괜찮아 엄마."라고 말하면서.
그 후로 병은 존재를 알리기 무섭게 엄마를 잠식해 나갔다. 한 사람으로 잘 살아내고 싶었던 엄마의 의지도 지켜보는 나도 많이 무너졌던 시간을 지나 엄마가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천국으로 여행을 떠난 지 7년. 시간이 지난 지금 갑작스럽게 왜 그때의 장면이 생각이 났냐면 무더운 24년의 여름. 그 장면이 꿈속에서 계속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꿈인지도 몰랐다. 그냥 내가 엉엉 우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고 나서야 '꿈이구나' 했고, 아직도 삼키지 못한 울음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딸꾹질 같은 그 잔상에 계속 머물면서도 눈물을 닦고 "겨울이 곧 오나보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과거의 나는 울지 않았고 다시 보게 된 그 장면에서의 나는 통곡하며 울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엄마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옆에 더 오래 있으면 좋겠어. 이게 뭐야. 도대체 왜 우리한테 이러는 거냐고!" 하면서 엉엉 아이처럼 운다. 그때의 나는 철렁 내려앉는 무언가를 느끼면서도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라 울지 못했다는 것을 꿈속에서 통곡하는 나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많이 두렵고 너무 슬퍼서 엄마를 붙잡고 울고 싶었다는 것을.
그때 울지 못했던 내가 지금이라도 울고, 뒤늦게 감정을 터트리나 보다 싶다가도 하나도 바래지지 않고 고스란히 느껴지는 고통과 슬픔이 낯설면서도 익숙해서 씁쓸했다.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하고, 일상을 보내고 난 후 집에 돌아오면 가시지 않은 그 감정이 계속 나를 건드렸다. 아마 내가 나를 안아줘야 하는 시간인가 보다 하면서 고생했다고, 그때 버티느라 바라보지 못했던 감정이 지금이라도 나와서 다행이라고 스스로 도닥거린다. 나를 품어줄 수 있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나밖에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는데, 7년이 지나도 여전히 같다. 1년이 지나도, 3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표현하는 방법이, 삼키는 요령이 더 많아졌을 뿐 여전히 같다. 그래서 항상 생각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틀린 말인 것 같다고. 그 생각이 아직 변함이 없는 걸 보면 7년도 생각보다 짧은 시간인가 보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