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 자연 수업 시간에 색종이를 접어서 꽃다발 만드는 방법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꽃잎을 하나하나 만들고, 꽃술까지 따로 만들어 붙여야 꽃 한 송이가 완성되는, 저학년용 종이접기 중에서는 꽤 손이 많이 가는 공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손 빠른 녀석들 몇 명은 "선생님! 다 만들었어요!"라고 외쳤을 테고, 그러면 나는 남은 시간을 헤아리며 "아직 시간이 15분이나 남았으니까 꽃 한 개만 더 만들어 보자."라며 응수했을 터. 그런데 그 수업 시간이 끝나도록 한 아이가 꽃을 계속 접어 붙이는 거다.
목표로 삼은 꽃다발은 꽃 세 송이가 들어간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였는데, 이 아이는 꽃을 이미 다섯 송이가 넘게 접어 붙이고 있었다. 심지어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그 아이는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내가 말했다.
"OO아, 꽃을 이렇게 많이 접었어? 꽃다발이 '대왕 꽃다발'이 되었네!"
내 칭찬에 그 애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계속 접다 보니까 이렇게 많아졌어요. 그런데 저 더 많이 많이 접을 거예요. 엄청 큰 꽃다발을 만드려고요."
쉬는 시간이 다 끝나도록, 점심시간과 다음 날 쉬는 시간까지 그 애는 틈만 나면 꽃다발에 꽃을 접어 붙였다. 그리하여 꽃이 스무 송이가 넘는 꽃다발이, 색종이로 만들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웬만한 꽃집에서 파는 가장 큰 사이즈의 꽃다발 만한 '대왕 꽃다발'이 완성되었다.
"우와, 진짜 크게 만들었네. 정성이 대단하다. 이 꽃다발 누구에게 선물하려고?"
"어... 아니요, 그냥 만들었는데요."
"그렇구나. 이렇게 정성이 들어간 꽃다발을 선물 받는 사람은 엄청 기쁠 것 같아."
늘 하던 칭찬의 말이었다. 특히 더 열심을 쏟은 아이에게는 칭찬이라도 조금 더 안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그런데 그 말이 그 애의 마음속에 어떤 버튼을 눌렀나 보다. 그 꽃다발은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스승의 날에, 나에게 왔다.
매년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용히 무거워진다. 혹여라도 무슨 선물이 들어오면 어쩌나. 받는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기 때문에, 솔직히 아무것도 받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평범한 하루이길 바란다. '스승'이라는 말이 가진 자못 엄숙하고 진지한 이미지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듯해 부담스럽고, '스승'도 아닌 것 같은데 '스승'이란 무엇이고 '스승의 날'은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지에 대해 가르쳐야 하는 날이라서 더욱더 부담스럽다.
내가 이 부담을 견디는 방식은, 미리 엄포를 놓는 것이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선생님은 일체의 돈이 들어가는 선물을 받지 않으니까 절-대-로 가져오지 말아라. 간식도 안 돼!" 이렇게 강력히 선언을 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맞다, 김칫국. 근데 김칫국을 마시는 편이, 김칫국 안 마셨다가 김장 김치 오백 통을 선물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스승의 날에 무언가를 받는 일은 내게 김치 오백 통을 선물당하는 기분까지 선사한다.(당장 이걸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부터 막막한 부담감... 그냥 거절하고 싶은데 거절하면 이 김치들(에 담긴 마음)은 또 어디로 가야 한담!)
스승의 날 4교시 수업 중이었다. 아이들에게 수업 활동을 안내하고, 각자 활동 시간을 주었다. 그 사이에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오늘 알림장에 안내해야 할 사항을 체크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실 불이 꺼졌다. 어리둥절한 사이, 늘 쉬는 시간마다 울려 퍼졌던 서툰 피아노 연주(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이인데...? 뜬금없는 타이밍에 갑자기 시작된 아이들의 깜짝 이벤트에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실 한 2주일 전부터 무언가를 하다가 화들짝 놀라 숨기는 행동이나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말들("야, 선생님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마. 알았지?" "너는 그런 말을 지금 하면 어떻게 해!" 등등...)을 의도치 않게 들어왔던 터라(이럴 땐 '투명인간' 연기를 하는 편이 좋다.) 이 이벤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이 이벤트의 세부사항이 내심 궁금하기도 했었다. 아홉 살짜리들 여섯 명이 나 없는 틈을 타서 머리를 맞대고 무슨 소동을 작당했을까, 하고.
그런데 이렇게 뜬금없는 타이밍(4교시 수업 중)에, 갑자기 불을 끄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나머지 애들이 어디선가 숨겨두었던 편지 꾸러미와 손수 만든 상장, 대왕 꽃다발을 들고 내 앞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선생님, 이거 받으세요!"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같은 말들이 뒤섞여 들렸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을 전혀 몰랐던 것처럼 연기하기를 선택했다. 이게 제일 고전적이고, 제일 잘 먹히니까.(이건 내피셜)
"와... 이거 다 선생님 주는 거야? 편지랑, 상장도 있고, 이 대왕꽃다발도 선생님 주는 거야? 우와... 너무 감동이다 얘들아!!!!"
"선생님, 이 상장은 제가 만들었고요. 꽃다발은 OO이가 만들었어요. @@이는 피아노 담당이고, **이가 카드 만들었는데, 이거는 이렇게 여기를 잡고 열면 돼요."
그동안 비밀로 하고 있느라 근질거렸던 말들이 터져 나온다. 말들의 홍수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드는데, 평소처럼 시끄럽거나 어지럽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건네준 상장과 편지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스티커와 반짝이가 잔뜩 붙어 있었다. 자기가 가진 제일 예쁘고 소중한 것으로 최선을 다하고자 한 마음들이 삐뚤빼뚤한 글씨와 맞춤법이 틀린 문장 사이사이에 빼곡히 박혀 빛났다.
마음에도 질감이 있다면, 아마 지금 내 마음은 몽글몽글한 솜사탕 같을 것이다. 사르르 녹아내리는 달콤함. 금방 녹아서 사라져 버리는, 덧없는 마음.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일이면 또 받아올림이 있는 덧셈과 받아내림이 있는 뺄셈을 가르치다 진이 빠져 애들을 다그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이라 쓰고 '포기'라고 읽음)하겠지. 쌓인 편지 더미와 대왕 꽃다발에 담긴 정성 앞에서, 나는 그 애정에 합당한 사람이었는지를 스스로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오겠지.
나에게 스승의 날은 스승을 위한 날이 아니다. '스승으로서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를 조용히 되묻게 되는 날이다. 스승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너무 부끄러운 어른은 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허울뿐인 말일지라도.
(2025.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