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출퇴근하는 2차선 도로 주위에 모내기를 마친 아기 벼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아 오르는 광경을 본다. 주변에는 이름도 의도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나무들이 서 있다. 그들은 가로수라고 하기에는 오래 방치된 듯한 야생미를 지녔지만, 심긴 위치를 보건대 아마 가로수의 운명을 타고났을 것이다. 그들 사이로 보이는 이 벼들은 여름이 다가오면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라고 있다.
주변에 논만 있는 건 아니다. 가끔 옥수수가 빽빽히 심긴 밭도 나오고, 매실이 특산품인 지역답게 매실 나무가 우거진 농장도 보인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가드레일 바깥에서 수상쩍게 웅성거린다. 지독하게 빠르고 시끄럽고 매캐한 냄새를 뿜어대는 도로 위의 자동차들 때문에 괴롭기는 해도, 이왕 이곳에 뿌리를 내렸으니 기어이 살아남아 살 길을 찾아내리라고 쑥덕거리는 듯하다. 이 모든 초록이 제각기 짙어지고, 반짝거린다. 어마무시한 더위 속에서도 더 길고 높아지는 태양빛을 모으려고 우글우글거리는 초록의 소리들이 들리는 듯하다.
더위에 녹은 아이스크림이 되어 그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망해가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까지 살아남을 생물종은 식물이겠구나. 인정한다. 식물에게 인간이라는 종족은 얼마나 하찮고, 또 얼마나 해로운 존재인지. 약간 바보가 된 기분이다. 이제부터라도 자연을 공부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자연을 과연 어떻게 배워야 하는 것일까? 아니, 배울 수는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매일 이 자연을 보며 출퇴근하는 20분 남짓의 시간을 일년 내내 반복하다보면 계절이 변해간다는 것, 내가 매일 먹는 밥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에게 오는지를 아주 조금 더 가늠해볼 수 있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땅이 녹으며 이름모를 새싹이 불쑥불쑥 올라오기 시작하고, 어느날 물이 논과 논을 다 채우면, 네모난 논 위에 반사된 물빛이 눈부시다. 며칠이 지나면 모든 논이 은색으로 빛나고, 또 얼마 후에는 물 위로 작고 삐죽이 솟은 벼들이 보인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서 흘깃거릴 때 벼가 자라는 논은 벼와 벼가 심긴 규칙적인 간격 사이로 반사되는 햇빛으로 부드러운 털을 가진 동물처럼 보인다. 한번 쓰다듬으면 부드럽게 누웠다가 다시 일어설 것 같은 초록색 털들 사이로 반짝이는 빛이 도로를 따라 달려오는 것 같다.
그 빛줄기는 초록색 털이 자랄 때마다 조금씩 가늘어진다. 벼가 더 많이 자라면 나를 따라오듯 달려드는 저 빛을 더 볼 수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아쉬워져서, 나는 점점 더 자주 창밖을 힐긋거리고 있다.
벼가, 너무 빨리 자라고 있다.
하지만 벼가 자란다는 건 곧 벼가 익는다는 뜻이니까 유감일 필요는 없다. 날이 갈수록 더욱더 초록에 가까워지는 벼가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어느새 초록을 덜어내기 시작한다. 연두가 되고, 연두에 노랑이 섞이기 시작하고, 마침내 바람에 휘날리는 사자의 털처럼 부드럽게 넘실대는 들판의 물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황량하게 이발당하고, 더이상 광택도, 윤기도, 어떤 호기심도 남지 않는 땅이 되어버릴 것이다. 겨울은 기억나지 않는다.
일년 내내 하루 20분씩 같은 곳을 스쳐가는 인간은 고작 이 정도의 감상만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