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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n 15. 2023

엄마는 도라에몽


 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열흘 만에 또 서울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엄마와 같이 가기로 했다. 검사받으러 갈 때 남편의 목적지가 (말은 병원이라고 했지만) 순대국밥집이었던 것처럼(<병원 가는 길> 참고) 엄마의 목적지도 따로 있었다.

 "용산역에서 도라에몽 전시회 하는데 엄마도 같이 갈래?"

 "도라에몽?"

 "파랗고 동그란 캐릭터 있잖아."

 "아아아! 너무 좋지~"

 캐릭터 좋아하는 딸을 37년 키우면 미피, 키티, 미키마우스, 도라에몽 정도는 언제든지 떠올릴 수 있는 엄마가 된다.


 용산역에 도착하니 12시 반, 병원 예약까지는 2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빠르게 전시회를 보고 점심까지 먹고 병원에 가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전시장 근처에 귀여운 도라에몽과 함께 사진 찍을 수 있는 곳이 마련돼 있었다.

 "나 도라에몽이 참 좋다?"

 "갑자기? 왜?"

 "파란색이잖아. 우리 영웅이 색깔."

 엄마의 '우리 영웅이'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답니다.


 전시는 도라에몽과 진구, 친구들의 귀여운 모습과 함께 사진 찍을 수 있는 공간들로 채워져 있었다. 엄마도 나도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면서 돌아다녔다. 그러다 만화 속 몇 장면들 앞에 멈춰섰다.


두근두근 도라에몽展


 2023년이 겨우 절반 정도 지나가고 있는데 올해 두 번째 퇴사를 했다. 8개월 계약 기간을 다 채울 수 없을 만한 상황이었고 가족, 친구들 아무도 퇴사를 말리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씩씩하게 웃으면서 회사를 나왔지만 혼자 있을 때면 문득문득 '아, 내가 또 회사를 그만뒀구나' 하는 생각에 주눅이 든다. 전시회에 오기 전까지 이런 데를 와도 되나, 이렇게 놀아도 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온 이유가 있었다. 아마도 이 문장들을 만나기 위해서. 이런 내 마음을 안 건지 옆에 있던 엄마가 말했다.

 "오늘 여기 오길 잘했다. 그치?"


 한껏 웃으며 사진을 80장 정도 찍고 전시회를 나왔다. 엄마는 나오는 길에 손수건, 포스터 등 굿즈도 놓치지 않았다.

 "자, 선물이야. 오모니랑 같이 오니까 좋지?"

 "응, 그럼 좋지~"

 전시장 근처에서 떡튀순 세트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병원 근처에 갔을 때 비가 억수 같이 쏟아졌다.

 "괜찮아. 우산 사면 되지. 기다려."

 우산을 썼는데도 역에서 병원까지 걸어가는 10분 사이에 바지와 신발이 흠뻑 젖었다. 엄마는 방수 재질의 후드티를 입고 있었는데 병원에 들어가서 보니 모자 안에 물이 한 컵 정도 들어 있었다.

 "내 옷 방수 짱이네ㅋㅋㅋㅋ"

 화장실 세면대에 모자 속 물을 털고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엄마랑 껄껄 웃었다. 검사 결과는 올해도 무사히 통과였다. 병원에서 나왔을 때는 비가 그쳐 있었다.

  

 바쁘게 돌아다니며 '서울 미션'을 마친 우리는 집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야 겨우 시원한 음료로 목을 축일 수 있었다. 한숨 돌린 엄마가 물었다.

 "요즘 집에서 뭐 해?"

 "책도 읽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알바도 째끔 하고 그래."

 "지난번에 회사 나왔을 때 너무 못 쉬었으니까 이번에는 좀 쉬어. 집에만 있지 말고 놀러도 가고 그래. 운동도 하고. 조만간 또 어디로든 일하러 가게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오늘 제일 재미있게 살아."

 "응. 오늘 진짜 재미있었어."

 언제든 내 편이 되어 주는, 언제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도라에몽 같은 엄마가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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