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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y 17. 2023

엄마 딸의 전두엽

자랑스러워

 37년 동안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오늘로 열흘째 출근을 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직업 교육을 받고 조만간 실무에 투입된다고 한다. 갑자기 하게 된 건 아니고 작년부터 관련 자격증 취득 등 준비를 하긴 했다. 내 앞가림도 못하는 내가 본의 아니게 '우리 엄마 취업 프로젝트'를 맡아 엄마를 모시고 여기까지 왔다.


 서류, 인적성 검사 합격 후 면접을 앞두고 엄마는 며칠을 끙끙거렸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이걸 꼭 해야 할까?"

 "응, 할 수 있지."

 "나 면접 본 적 한 번도 없어."

 "괜찮아. 물거나 해치지 않아."

 "좀 고민해 볼래."

 "아냐, 생각을 하면 안 돼. 그냥 하는 거야."

 며칠을 설득한 끝에 인생 첫 면접을 본 결과는 합격이었다. 돼도 안 할 것 같았던 엄마는 연락을 받자마자 합격 기념으로 갖고 싶었던 피규어를 샀다.


 20명 남짓 되는 교육생 중 엄마는 '언니' 그룹에 속한다고 한다.

 "애들이 언니는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신청했냐고 묻더라?”

 "그래서 뭐라 그랬어?"

 "우리 딸이 다 해줬다고 했지~"

 "아유, 뭘 그랬어."

 어쩌다 '영웅이 팬'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엄마의 딸 자랑은 계속되는데...

 "딸 덕분에 영웅시대도 가입하고 콘서트도 갔다 왔다고 했어."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딸이 되려면 다음 콘서트 티켓팅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제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엄마와 밀린 토크를 했다. 한창 떠들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있잖아, 책을 많이 읽으면 전두엽이 발달한대."

 "갑자기?”

 "며칠 전에 배웠는데 따님이 그래서 전두엽이 발달한 거였어."

 "내가?”

 "너 책 많이 읽잖아. 그래서 똑똑하고 말을 잘하는 거였어.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좋대. 전두엽 발달하려면 종이책 읽어."

 "에?”

 엄마한테 전두엽까지 자랑스러운 딸이 되려면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날그날 뭘 배웠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엄마가 보내주는 사진을 받아보는 게 요즘 큰 즐거움이다. 

아빠 엄마 딸 아들 사위 그리고 우리 순이


 -이게 뭐야?

 -과자로 우리 가족을 표현한 거야 순이도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


 사위까지 야무지게 만든 엄마의 작품이 귀여워서 저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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