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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r 19. 2023

아빠와 엄마와 강아지의 꽃놀이

어느 좋은 봄날


 작년 연말 아빠의 퇴직 후 3개월이 흘렀다. 37년 동안 해오던 출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일상에 익숙해지기 위해 아빠는 물론 엄마까지 고군분투하신 듯하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래도 적응을...하셨다고 말하기에는 딸이 뭘 알겠습니까. 모쪼록 부모님이 과도기를 잘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본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떨어져 사는 딸이 보기에 크게 달라진 건 두 가지 정도 같은데 하나는 아빠가 최근에 눈썹 문신을 하셨다. 날 때부터 눈사람처럼 못생겼던 나와 달리 아빠 눈썹은 잘생긴 축이었는데 점점 빠지고 흰 눈썹도 나서 고민이셨던 모양이다. 엄마의 적극 추천으로 최근 문신을 하셨고 크게 만족하셨다고 한다. 웰컴 투 짱구 월드입니다, 아부지.


 또 하나 달라진 건 강아지다. 대부분의 강아지가 그렇듯 우리 순이도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데 아빠가 퇴직하시고 집에 계신 시간이 늘면서 혼자 있는 걸 더더더 싫어하게 됐다고.

 "우리가 나가려고 하면 먼저 현관에 가서 지키고 서 있어. 자기도 데려가라고."

 "똥개 버릇 다 버렸네."

 "내 말이."

 마음 약하신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강아지를 데리고 외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은 꽃에 둘러싸여, 또 어느 날은 아빠 차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강아지 사진이 그래서 나온 것이었다.


생각에 잠긴 순이


 "우리 내일 아빠랑 순이랑 꽃놀이하러 가자. 광양에 꽃이 활짝 피었대. 이번 주가 절정이래."

 며칠 전 엄마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래 차 타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자격증 시험이 며칠 안 남아서 마음이 급했다. 

 "순이 데리고 가기에는 너무 멀지 않아? 내가 볼 테니까 두고 가. 그래야 가서 식당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지." 

 "아냐, 도시락 싸갈 거야. 쉬엄쉬엄 가면 괜찮아."

 나와 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꽃놀이 원정대(?)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났고 남도에 먼저 닿은 봄을, 꽃을 만끽했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사진 속 순이는 하나 같이 입을 활짝 벌리고 웃고 있었다.


기분 짱


 "하이고, 안 데리고 갔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럼. 얼마나 좋아하나 몰라. 차에서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오늘 기분 짱이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좋겠네, 똥개."

 

 동생도 나도 본가 가까이에 살지만 우리가 과연 순이만큼 효도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조그만 털 뭉치가 없는 우리 가족은 이제 상상할 수도 없다. 순이와 함께하는 열한 번째 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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