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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n 20. 2023

님아 그 야구를 보지 마오

스포츠 바보의 야구 입문기


 막내 작가 시절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서 스포츠 뉴스 코너를 썼다. 썼다고 하기는 좀 뭐한 게 전날 저녁에 나간 스포츠 뉴스를 길이만 줄여서 내보내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사실 축구도 '골인' 정도만 아는 수준이라 손을 대기가 힘들었다. 특히 심각한 건 야구였는데 전날 잘못 나간 뉴스를 그대로 갖다 썼다가 혼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슨 배짱이었나 싶네요.


 남편은 고등학교 때부터 한화 팬이었다고 한다. 1년에 한두 번씩은 경기를 보고 오는데 갔다 올 때마다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구장 진짜 재밌거든. 거기서 치킨이랑 맥주 먹으면 엄청 맛있다? 너도 한 번 가보면 좋을 텐데."

 "치맥은 좋은데 난 야구 몰라. 누구랑 누구랑 같은 편인지도 몰라."

 "그건 보다 보면 알게 돼."

 "여보는 나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이랬던 내가 지난 주말 남편 손을 잡고 야구장에 다녀왔다.


 한화 홈 경기였고 상대는 키움이었다. 언젠가 유퀴즈에 이정후 선수가 나온 걸 본 적이 있다. 그래, 야구는 몰라도 이정후 선수를 응원하러 가는 거야! 이런 나에게 남편은 단단히 주의를 줬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한화 응원석에서 그러면 큰일 나."

 "그런 게 어딨어? 난 정후 님이 좋아."

 "안 된다니까?"

 경기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남편 말을 이해했다. 1루 테이블 석에서 이정후 선수를 응원했다가는... 진짜 큰일 나겠더라고요.


 가기 전에 남편에게 몇 가지 교육을 받았는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선수별 응원가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르는데 어떻게 불러?"

 "가서 앉아 있어 봐. 정신 차리면 이미 부르고 있어."

 "그럴 리가??"

 이것도 남편 말이 맞았다. 나는 어느새 목 놓아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다음 날 일어나니 목이 쉬었다.) 몇 바퀴씩 도는 파도타기에 몸을 맡겼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건 앞서가던 키움을 (잠시) 한화가 역전했을 때였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아니, 뭐 저런 노래가 다 있냐고 생각하면서 몸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신나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이정후 선수, 제가 많이 응원해요. 마음속으로요... 

 

 8회 말, 경기는 키움으로 기울어 있었다. 예약해 놓은 기차 시간 때문에 결국 끝을 못 보고 경기장을 나왔다. 역에 와서도 계속 야구를 검색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물었다.

 "여보... 뭐해?"

 "아, 졌어!!! 뭐야 이게!!! 그러니까 아까 만루 때 점수를 냈어야지!!!"

 "뭐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집에 와서도 야구의 흥을 끊지 못하고 <최강야구> 정주행을 시작했다. 너무 재밌어. 다음 날 한화 경기도 찾아봤는데... 그건 보지 말 걸 그랬다. 이게 야구의 매력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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