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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Feb 20. 2024

작가라는 오해

작가란 무엇인가 


 정신 차리니 14년 차 방송 작가가 되었다. '내가 작가라니 쩐다'는 자의식에 찌들어 살던 막내 작가 시절을 지나고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서브 작가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10년 차를 넘기고는 해외여행 다닐 때 출입국 신고서 따위 서류의 직업란을 채울 때나 '아, 내가 작가구나' 한다. 가능하다면 직업과 거리를 두고 싶은 14년 차가 되었다.


 어딜 가든 작가라고 하면 신기해한다. 작년에 방송국에서 탈출했던 6개월 동안 그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심지어 그때는 작가가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당시 나는 2년 동안 준비해서 취득한 자격증을 들고 집 근처에 기술직으로 취업을 했다. 방송국이 지긋지긋했고 3시간이 넘는 출퇴근에 신물이 나 있었다. 사람이 귀한 동네(지원자가 나 한 명이었다)라 서류를 내자마자 합격, 면접은 거의 환영식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이전에 방송국에서 작가로 일했다고 말하자 나를 보는 표정들이 달라졌다. 그때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회사를 조금 더 다닐 수 있었을까.


 다들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렀다. 작가가 아닌데,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방송국도 아닌 곳에서 나는 여전히 작가님이었다. 심지어 부서장은 다른 팀원들과 모인 자리에서 밑도 끝도 없이 내 과거를 늘어놓았다.

 "여기 초롱 씨 제가 소개 좀 할게요. 최근까지 방송국에서 집필 활동을 하시던 작가님입니다. <경찰청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 아시죠? 그게 초롱 씨 작품이랍니다."

 부서장은 면접 때 내가 업무 관련 경력이 0이라는 것보다 무슨 프로그램을 했는지, 방송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더 궁금해했다. 참고로 <경찰청 사람들>은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90년대에 방영된 프로그램이다.

 "혹시 소설 같은 것도 쓰시나?"

 "앞으로 집필 계획 같은 건 있으시고?"

 여기저기 내가 전직 작가이자 언제든지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집필이라... 브런치에 아무렇게나 나불거리는 것도 집필이라면 글쎄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쓰는 게 목표라고 대답할 걸 그랬나. 도저히 회사에 다닐 수 없는 몇 가지 이유에 '어차피 작가님 소리 들을 거면 다시 방송국으로 가자'는 생각도 한몫해서 두 달 만에 때려치우고 나온 건 지금도 잘한 선택이었지 싶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방송국이라는 화려한 공간에서 무에서 유를 창작하는 예술가, 막 이런 거 아니거든요. 아침에 눈 뜨면 '와씨, 오늘도 드럽게 회사 가기 싫다'면서 이불을 걷어차고 저녁에 퇴근할 때는 '대박, 오늘도 안 그만두다니 짱이네' 스스로 기특해하는, 내일 당장 잘려도 이상한 것 없는 후리랜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랍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훌륭한 작가님들이 더 많이 계시겠지만요. 역시 저만 이 모양인 걸까요. 어쩌면 작가를 가장 오해하고 있는 건 나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https://fegol.net/en/2019/03/12/graphite-pencil-vs-mechanical-pencil-which-is-the-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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