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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r 31. 2024

6연승의 맛

DIFFERENT US


 개막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옆에 서 있던 중년 여성 두 분의 대화를 듣게 됐다.

 "저기 한화 건물이 있네? 자기 그거 알아? 한화 야구팀 있잖아. 거기 응원하는 사람들은 한화가 아니라 화나라고 한다네?"

 "화나? 왜?"

 "야구를 너무 못해서 화가 난다는 거지. 작년에도 꼴찌 했잖아."

 신발 끝을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꼴찌 아니에요... 9등이에요...


 뭘 그렇게 오래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중학교 2학년 때 신화 오빠들을 두 달 정도, 고등학교 1학년 때 동방신기에 이틀 관심 가진 게 전부다. 작년 가을 홈 폐막전에 다녀오면서 궁금했다. 내년에도 야구를 볼까. 야구장에 또 올 일이 있을까.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는 나의 착각이었다.


 겨울이 참 길었다. 나는 내 생일이 있는 봄보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을 더 좋아하고 하루하루 가는 걸 아쉬워했는데 야구 입문 후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새해를 맞아 일력을 장만하고 한 장씩 팔랑팔랑 넘기며 '오, 한 달 전', '오오, 보름 전!' 개막만 기다렸다. 술이라도 먹은 날이면 그렇게 응원가를 불러제꼈다. 류현진 선수가 복귀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작년에 고민만 하다가 결국 포기했던 유니폼도 샀다. 올해는 더 열심히 응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 야구만 잘하면 되는 거죠.

 

 우리 집 예매왕 남편의 활약으로 어제 이번 시즌 첫 직관을 다녀왔다.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이 고향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연승으로 분위기는 한껏 들떠 있었다. 자리를 잡고 떡볶이에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라자라자 페라자 선수와 안치홍 선수의 홈런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경기장을 꽉 채운 응원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난 이제 평생 여기를 벗어날 수 없겠구나. 어제 한화이글스는 26년 만에 개막 7경기에서 6승을 기록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


 대전에서 하루 자고 오늘 집에 오는 길.

 "빨리 집에 가서 6연승 한 거 브런치에 써야겠어."

 "안 피곤해?"

 "오늘 경기 끝나기 전에 써야 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그것도 그러네."

 지금 TV 앞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시환상적으로 홈런이 터졌네요. 7대 0입니다. 7연승의 맛은 또 어떠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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