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도 불안이도 아닌 당신은
2년 만에 남편과 영화를 보러 갔다. '눈물을 참기 어렵다', '너무나 내 이야기'라는 후기들을 보고 손수건이라도 챙겨갈까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영화 어땠어?"
"추억 할머니 너무 귀엽네ㅋㅋㅋ"
감성보다 이성이 발달한 T 인간들은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면서 울지 않았다. 다만 이 얘기를 회사에 가서 했더니 날 보는 동무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언니 진짜 무서운 언니네."
아냐, 얘들아, 그런 거 아니야.(?)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달라진 건 있다. 즐거울 때는 기쁨이가, 우울할 때는 슬픔이가, 화가 날 때는 앵그리(?)가 버튼을 눌렀나 보다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남편의 본부에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또 다른 감정이 살고 있는 것 같다.
"올해 시험 한 번 더 보려고."
오늘 점심을 먹고 마트 산책을 하며 남편에게 별일 아닌 듯 얘기했다. 나는 4년 전 자격증 준비를 시작해서 이제 1급 하나를 남겨 놓고 있는데 남편은 더 이상의 공부를 반대하고 있다. 장거리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지치니 그만하라는 것이었다. 한동안 회사에 힘든 일이 있었서 공부를 할 수도 없었다. 고비를 넘기고 나니 얼마 안 남은 자격증 시험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말이 없던 남편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객관적으로, 붙을 수 있을 거 같아?"
"와... 매정이 또 나왔네."
합격할 자신은 없고 미련만 있었던 나는 남편의 뼈 때리는 말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떨어질 시험을 왜 보지?"
"시험 때까지 열심히 하면 붙을지도 모르잖아."
"시험 때까지 열심히 할 시간은 있고?"
"야!!!"
남편은 민들레 씨앗 불 듯 나의 가루 같은 자격증 미련을 후 날려 버렸다. 그렇다. 남편은 좀 매정한 사람이다.
마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처음 듣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거 누구 노래게? 여보도 알긴 알 텐데."
"뉴진스?"
"말고."
"에스파?"
"맞아. 요즘 차트 1위래."
핑클에서 멈춘 나에게 요즘 걸그룹은 참 예쁘고 멋있고 대단한데 노래 가사는 잘 못 알아듣겠는... 그런 존재다.
"슈퍼노바 말고 나머지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늙은 거지."
"야!!!!!!!!!!!!"
그럴 수만 있다면 남편의 본부로 들어가 매정이 멱살을 잡고 저 멀리 날려 보내고 싶은 주말 오후였다.
사진 출처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038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