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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Aug 28. 2024

엄마와 한낮의 영화 한 편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을 보고


 3년 전 엄마가 임영웅 님의 팬이 되면서 열심히 티켓팅을 해서 콘서트에 보내드렸다. 매번 힘들었지만 운 좋게 계속 피 튀기는 티켓팅에 성공하다가 올해 봄에 처음으로 실패했다. 

 "이번에는 더 치열할 줄 알았어. 괜찮아... 진짜 괜찮아..."

 하나도 괜찮지 않은 엄마 목소리에 몇 날 며칠 잠을 설쳤더랬다. 한동안 꿈에서도 티켓팅을 했다. 그래본 적은 없지만 전쟁터에 나가서 화살을 맞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영화관에서 콘서트를 볼 수 있게 됐고 오늘이 개봉하는 날이었다. 엄마는 보름 전쯤 두 자리를 예매해 달라고 했다. 

 "아빠한테 물어보고 안 간다고 하면 딸이랑 가야지."

 "내가 왜?"

 "같이 봐야 재밌지."

 "... 개봉하기 전에 빨리 취직해야지."


 -팝콘 사야 하니까 빨리 가자

 아침에 엄마한테 메시지가 왔다. 여전히 백수인 나는 오늘 엄마를 따라 영화관에 가야 했다. 멀리서부터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물론 내 옆에 있던 엄마도 파란색 옷차림이었다. 

 "라지 팝콘을 사야 해. 두 개 사자."

반반 팝콘으로 시켜보았습니다

 

 왜 팝콘을 사자고 하나 했더니 팝콘 통에 그분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계속 생각했다.

 '여기는 야구장이다. 엄마의 야구장이다. 내가 야구장 가면 떡볶이 사 먹는 거랑 똑같은 거지.'

 10분 일찍 영화관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우리 엄마보다 연세가 있어 보이는 여자분이 자리를 찾고 계셨다.

 "1열이 어디래요, 1열?"

 "1(일)열이 아니라 I(아이)열이에요. 저기가 I열이에요."

 "아유, 고마워요."

 그동안 가본 영화관과는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엄마 옆자리 관객    (자리에 앉으시면서) 안녕하세요~

 엄마                    네, 안녕하세요~

 나                       (작은 목소리로) 누구야?

 엄마                    (역시 작은 목소리로) 영웅시대겠지~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연대감, 유대감이 눈앞에 펼쳐졌다.


 "영웅시대! 소리 질러~~~"

 스크린에 나타난 그분이 외치자 영화관이 함성으로 가득 찼다. 중간중간에 관객들이 다 같이 웃기도 하고 노래가 끝나면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동안 늘 콘서트장 밖에서 엄마를 기다렸던 내 눈에는 모든 게 새로웠다. 엄마가 이런 노래를 들었구나, 이런 걸 보고 웃었구나, 그래서 또 콘서트에 가고 싶어 했구나.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값진 2시간이었다. 


 -따님 영화 같이 봐줘서 넘 고마오

 메시지를 받고 엄마한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콘서트 티켓팅은 무조건 성공해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영웅 님, 제발 호남평야도 공연 장소로 고려해 주시길. 그리고 오래오래 우리 엄마의 영웅, 활력소가 되어주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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