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우리를 찾아서
일주일 전 남편이 (배우들은 오지 않는) 시사회에 당첨됐다고 해서 모처럼 영화를 보러 갔다. 나는 영화만 틀면 자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관 가는 건 좋아한다. 맛있는 팝콘도 먹고 어두운 데서 쿨쿨 잘 수 있으니(...) 좋을 수밖에요. 한때 영화광이었던 남편이 나를 만나고 영화와 멀어진 건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금요일 저녁이라 차가 밀릴 것 같아서 전철을 탔다. 우리가 내린 역은 지금으로부터 십몇 년 전, 스물두 살의 초롱이 전 남친과 처음으로 손을 잡은 곳이었다. 나는 어쩐지 추억에 젖었다.
"내가 그때... 생각이 많이 짧았지..."
"그러게 신중했어야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누가."
전 남친이자 현 남편과 그때처럼 손을 잡고 낄낄 웃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연휴를 앞둔 번화가는 꽤 들뜬 분위기였다. 바로 집에 갈까 하다가 모처럼 우리의 추억이 깃든 골목을 걸어보기로 했다.
"여기 옛날에 서래 있었는데."
"맞아, 여보가 1시간 통화해서 내가 빡쳤던."
전 남친은 군대 간 동생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왔다가 불판 앞에서 눈이 돌아버린 여친을 달래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우리 처음 갔던 롤 집도 없어졌네."
"거기 없어진 지는 꽤 됐지."
전 남친은 처음 만났을 때 여러 번 빕스에 가자고 했었다. 스물두 살의 주머니 사정은 빤했으니 내가 우겨서 뷔페 대신 롤을 먹었다. 당시 나는 인생 첫 소개팅에 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안에 조립 장난감이 들어 있는 계란 모양 초콜릿을 두 개나 사 갔다.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초콜릿을 깨고 장난감을 꺼내서 조립하며 아무 말이나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전 남친에게 고맙다. 나랑 결혼해 줘서.
출출해서 어디라도 들어가 볼까 싶어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면서 지금 여기 있는 대부분의 젊은이가 아마도 유치원생, 초등학생이었을 시절 이야기를 전 남친과 나누었다.
"여기를 이렇게 중년 부부가 돼서 다시 올 줄이야."
"기분이 이상하네."
마침내 우리는 어느 이자카야에 마주 앉았다. 붉은 조명 아래 전 남친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한결같은 사람, 허구한 날 헤매는 나에게 등대 같은 사람,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과 좋은 금요일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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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큰하게 취해서 집 앞 호프집으로 2차를 갔다. 나는 소시지 꿀강정, 남편은 짭짤한 명란구이를 주문했다.
"여보가 싫어하지만 난 오늘 명란을 먹고 싶었어."
"그래, 많이 먹어."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나도 명란 한 번 먹어보자. 대박? 짱 맛있네?"
"...어? ...킹받네?"
이렇게 오늘도 조금씩 알아가는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