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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Nov 13. 2024

엄마의 버킷리스트

나의 사랑 나의 자랑

 

 40년 가까이 전업 주부로 살았던 엄마가 작년 여름 '선생님'이 되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아이돌보미로 일하게 된 것. 서류 접수부터 인적성 검사, 면접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엄마의 주저하는 마음을 달래는 것이었다. 엄마가 원해서 시작은 했지만 집 밖으로 나가는 데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했다. 갈팡질팡할 때마다 엄마는 할 수 있다고, 해낼 거라고 말하면서도 사실 확신이 없었다. 나쁜 사람들 만나서 엄마가 상처라도 받으면 어떡할 거냐고 동생한테 원망 섞인 소리를 듣고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내가 괜한 일을 했구나 후회하게 되면 어쩌나, 겁이 났다.


 1년이 훌쩍 흘렀다. 엄마는 (내 눈에) 베테랑 아이돌보미가 되었다. 이제는 새로운 아이를 만나러 갈 때도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한테 단발성으로 아이를 맡겼던 부모님에게서 계속 봐줄 수 없냐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거의 우리 동네 영유아 보육계의 기둥이시네."

 "내가 이렇게 잘할 줄 누가 알았겠어."

 "힘들게 시작한 보람이 있어, 아주."

 "다 따님 덕분이지~"

 결혼하고 아빠 월급밖에 몰랐던 엄마에게 매월 중순, 소중한 월급날이 생겼다. 엄마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적금을 들었다.

 "내가 번 돈으로 아빠랑 여행 갈 거야."

 "왜 아빠랑 가, 나랑 가야지?"

 "결혼기념일 선물로 갈 거거든. 37년 동안 우리 먹여 살렸으니까 아빠한테 이 정도는 해줘야지."

 지밖에 모르는 딸내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엄마는 한 달에 50만 원씩, 열 달을 모아 500만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아침 4박 5일 일정으로 아빠와 여행을 떠났다. 무사히 도착한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싱가포르 오는 게 내 버킷리스트였거든 드디어 이뤘어!

 -멋지네!


영웅시대 파이팅(?)

 

 보내오는 사진마다 행복해 보이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떠나기 며칠 전, 엄마는 이런 얘기를 했다.

 "싱가포르에 그 유명한 호텔 있잖아. 비싸긴 한데 마지막 날은 거기서 자기로 했어. 내가 또 언제 싱가포르에 가보겠어.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지.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하는 거라서 더 뿌듯해."

 22년 뒤면 지금의 엄마 나이가 된다. 그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 엄마처럼 멋지게 있을까. 


 엄마의 다음 버킷리스트가 뭔지 벌써 궁금해진다.


photo by 우리 엄마 란이 씨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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