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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두 번째 스승의 날

감사해요

by 초롱


3년 전 아빠의 정년퇴직을 앞두고 부모님은 위기의 나날을 보냈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진다는 불안감은 하루하루 커져만 갔다.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37년 전업 주부'였던 엄마의 진로 고민이 시작된 것은.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데 엄마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이 돌보미를... 한 번 해볼까?"

"음...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아이들을 좋아했던 엄마의 어렸을 적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었다. 나와 동생에게 세상 누구보다 다정하고 훌륭한 양육자였고 지금도 길에 아기들이 보이면 그냥 지나가질 못하니 우리 엄마도 당연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관련 자격증을 딸 수 있게 도왔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아이 돌보미 모집 공고를 주기적으로 찾아보았다. 이후 서류 심사와 면접, 인적성 검사(무려 1등), 한 달간의 교육 과정을 거쳐 엄마는 2년 전 어느 초여름 날 '아이 돌보미 선생님'이 되었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엄마는 여러 번 주저했고 나는 자꾸만 불안했다. 특히 엄마의 취업을 반대했던 동생에게 '엄마가 어디서 사람 잘못 만나 상처라도 받으면 어떡할 거냐'고 원망 섞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 울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벽을 깨고 나가면 엄마 인생에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으니까.


요즘 엄마는 막 돌이 된 아기부터 4살, 5살 남매와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를 돌본다. 평일에 매일 가는 집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집도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 좋은 부모님과 아이들을 만나 즐겁게 일하고 있다. 보름 전 스승의 날 아침엔 엄마한테 사진 한 장과 메시지가 왔다.


KakaoTalk_20250531_221014068.jpg 제가 더 감사해요


- 애기 엄마가 손편지랑 주더라구. 오늘은 내가 이 일을 잘했구나 맘이 흐뭇하네. 나의 제2의 보람 있는 인생을 시작하게 도와준 울 딸에게도 고맙다는 말하고 싶어. 오늘도 홧팅하고~


언제부턴가 운명 혹은 팔자를 믿게 되었다. 계기가 잘 기억나진 않는데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은 되는 거라고, 만날 사람은 다 만날 거라고 생각하면 좀 편해진다. 여기에 착하게 살면 좋은 일과 좋은 사람에 닿을 거라는 믿음을 더하고 나면 뾰족했던 마음이 조금은 동그래진다.


엄마가 좋은 선생님이 된 건 엄마가 원래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건 누구보다 선하게 산 덕분이다. 다만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하다. 엄마가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다정한 마음들에게,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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