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잡아라
올해 상반기에만 두 번의 퇴사, 두 번의 입사를 했다. 14년 차 프리랜서로서 이직에는 도가 텄다고 자부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주 아팠고 무기력했고 또 불안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 그 시간을 온몸으로 때려 맞았다. 이제 서서히 벗어나는 중이다.
집 밖에서 힘들 때는 집 안에서의 일상이 37배쯤 더욱 소중해진다. 어제저녁 이틀 만에 집에 온 남편과 일찍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언제나 가려운 남편 등을 복복 긁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거 게임에서 농장을 열심히 하고 있거덩요."
"뭐야, 이게?"
남편이 세상 알록달록한 그림이 가득한 아이패드 화면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진지하게 설명하는데...
"이렇게 농작물을 심고 다 자라잖아? 그럼 사람들이 귀신같이 찾아와서 다 훔쳐 간다?"
"...왜?"
"원래 그런 거야."
"그럼 여보는 어떡해?"
"나도 가서 훔쳐."
"뭐야, 그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믿지 않자 남편이 농작물 도둑질 현장(!)을 보여주었다.
"자, 이거 봐봐. 지금 여기 이 밭에 작물이 다 자랐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거야."
"세상에, 이 사람들이 다 훔치러 온 거라고?"
"그렇다니까~"
다른 사람들에 밀려 결국 아무것도 훔치지 못하고(!) 빈손으로 자기 밭에 돌아온 남편의 캐릭터와 남편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불과 몇 시간 전 회사에서 가슴 졸이며 원고 쓰던 게 전생처럼 느껴졌다.
오늘 아침, 바쁘게 출근 준비하던 남편이 갑자기 불렀다.
"여보, 부탁이 있거덩요. 이따가 8시 반에 밭에 가서 물 좀 주고 무 좀 뽑아주세용."
"..."
"이렇게 물뿌리개 누르고 무가 쑥 자라면 캐면 되는 거야."
"왜..."
"부탁해용~"
1시간 뒤 남편의 밭에 들어가니(...) 물뿌리개가 활성화돼 있었다. 그걸 누르니 무가 쑥 자랐고 바로 무 도둑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 짜식들이!"
남편의 소중한 무를 뺏길 수 없어 허둥지둥 수확했다. 그러고 나니 무 도둑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의 일상을 지키는 남편을 위해 농장을 지켰다. 뿌듯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