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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Oct 23. 2024

[중동4] 십자군 원정

붉은색 십자가의 또렸한 문양을 사용했던 십자군! 암흑시대가 끝난 뒤 기독교 성지회복을 위한 유럽의 연합원정군이었다.


1096년 부터 시작된 십자군 원정은 1270년까지 8차례의 원정군이 출전하였으며 그후로도 오스만제국에 여러 형태로 대항하였으나 1453년 비잔틴 제국의 멸망으로 십자군은 완전 소멸되었다.


이슬람의 지배하에 놓여있는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는 성스러운 명분의 십자군 원정! 초기에는 순수했고 의미 있었으나


중기, 후기에는 전쟁 목적지도 갈팡질팡했고, 장사꾼들에 이용당하는 등 우수쾅스럽게 변질된 이름만 성전이었다.


초기 십자군(1~3차 원정)은 비교적 명분에 충실한 전투와 활동을 하였다. 특히 1차전에 콘스탄티노플과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예루살렘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셀주크투르크의 반격에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특히 1차전 승리 후 왕국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민중 십자군' 20만명은 도중에 셀주크군의 습격으로 전멸하였다.


중기 십자군(4~6차 원정)은 이슬람의 강한 저항에 목적을 못이루고 원정목표를 콘스탄티노플, 이집트로 변경한 '방향전환 십자군'이 되었다.


 다분히 이는 함대비용을 제공한 베네치아 상인들의 요구에 야합하여 같은 기독교 국가를 공격한 해프닝이 었다.  


*** 목동 에티엔 계시를 계기로 만들어진 '소년십자군'은 프랑스, 독일에서 5만명이 결성되어 출전하였으나,

항해중 폭풍으로 많은 인명손실이 있었고, 남은 자들은 마르세유 상인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리는 오욕으로 얼룩진 십자군소동도 있었다.


그외에도 ALbi십자군, 동방십자군, 북방십자군 등 여러형태의 활동도 십자군으로 치부되었다


프랑스 루이 9세가 주동한 말기십자군(7,8차 원정)은 무력하였고 오히려 잔존영토 모두를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근 450여년간의 긴 이 전쟁은 종교적 갈등과 편견의 근원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교황의 권위를 쇠퇴시키고, 기사계충을 몰락시켰으나 역설적으로 상공업을 발달을 촉진시켰으며 종교개혁, 르네상스의 계기가 되었다


파괴의 전쟁이 창조를 가져다 준 역설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양 진영(유럽 기독교과 중동 이슬람)간 갈등의 핵으로 등장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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