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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Oct 21. 2024

[중동3]화합왕 알렉산더

파괴를 상징하는 전쟁! 인류 역사와 함께하고 있으며 그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BC 3000년 부터 AD 1950년까지 14,500여 건의 전쟁이 있었으며 1945년 이후 분쟁이 없었던 주는 3주에 불과하다고 한다(by 앨빈 토플러).


아마 전쟁은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 세계 전쟁사에 우뚝 솟은 명장 중 세계평화를 위하여 세계인들이 다시 기억하고 평가해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마케도니아 출신 젊은 영웅 알렉산더 대왕이다.


알렉산더는 그리스 변방의 도시국가 마케도니아의 왕자였었다. 부친인 필립왕은 아테네와 테베연합군을 물리치고 그리스를 통일하고, 페르샤 원정 준비 중 암살당하였다.


18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한 알렉산더는 국내의 반란을 제압한 후 BC 334년 부친의 유언을 실천하러 동방원정을 개시하였다.


소아시아, 북시리아 공략에 이어 이수스전투에서 페르샤 군을 격파하고, 파죽지세로  시리아, 가자, 페니키아를 정복 후 이집트를 공략하였다.    


초승달지역 가우가멜라 전투에서는 페르샤 다리우스 3세를 곤경에 빠뜨려 사망케 하였다.


전투 간에도 그 당시 용병술 수준을 뛰어 난 전투지휘로 수적인 열세에도 연전연승을 하였다.


사선대형, 양동전술은 물론 역정보 이용, 야간추격 등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 용병술의 천재라 할만하다.


전열을 정비 후 이란을 정복하고 인도 인더스강까지 진출하여 재위 15년 만에 그리스~ 이집트~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인도 원정후 바빌론에서 아라비아 반도 원정 준비 중 급작스런 열병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알렉산더의 위대함은 전장에서 백전백승이 아니라 승리 후 점령지에서 통치였다.


'창업은 쉽되 수성은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피점령지역의 안정적 관리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이동이나 통신연락이 어려운 고대에는...


알렉산더의 화합리더십의 핵심은 '만인동포관'을 가지고 피점령지역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본인이 현지 신전에 참배,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탈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 형성)하였다.


또한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알렉산드라 70개를 건설하여 리더십을 확립하였다.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라가 그것을 대표상징한다.


*** 파로스의 등대는 그때 세운 거대한 건축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그 후 여러 번의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잔해가 바닷속에서 발견되었다.

그의 사후에도 마케도니아, 이집트, 시리아를 중심으로 해서 3개국으로 분화되었으나 서로 큰 갈등 없이 상당기간을 공존하였음이 이를 증명한다.


'원교근공'의 격언이 상기시키듯이 주변국 간에는 갈등요인과 쟁투가 상존한다. 이럴 때 승자독식의 마인드는 상호갈등을 격화시키고 공존이 어렵다.


악화된 아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와 주변국 아랍국들의 정세를 보며 더욱 안타깝다.


누적되고 얽힌 갈등덩어리로 변한 이 문제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공존이 안 되는 건 우매한 대중들 때문일까? 지도자들의 욕심 때문일까?  언제 인간들이 공존의 지혜를 배울까? 역사를 돌아봐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가 너무 아쉽다.


30년만 더 재위해서 유라시아 대륙에 통합의 헬레니즘 문화를 정착시키고 그 제국이 오래 동안 그 지역을 통치했으면 세계는 좀 더 평화로워지지 않았을까?


알렉산더가 더 그립다. 네타냐후나 신와르처럼 자기편만 악착같이 챙기는 리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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