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파파 Feb 01. 2021

#8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친구 사귄다 생각하고 편하게 한번 만나봐."

 서울에 온 지 두 달, 베프가 건넨 연락처가 인연의 시작을 알렸다.  "뭐... 한번 연락해 볼게" 라며 시크한 척 답했지만 기대와 호기심에 두근거리는 맘은 어쩔 수 없었다. 상대방도 아는지 카톡으로 인사했고 시간이 맞아 보기로 했다.  장롱에 드문드문 걸린 옷들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 좀 사놓을걸...'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건 나였다. 오는 중간 늦을 거 같단 상대의 카톡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아무렴 어때. 난 젠틀한 서울남자(에서 사는 남자)니까 그 정돈 봐줄게'... 라며 그렇게 2시간을 기다렸다.  맘속으로 소개해준 베프의 싸다구를 1000번쯤 날리고 있을 때  "나 도착했어" 라며 전화가 왔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이길래 이렇게 뻔뻔한지 얼굴이나 보자!' 란 생각으로 투덜거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긴 생머리에 짧은 미니스커트, 빨간 립스틱, 간들거리는 콧소리를 내며 인사한 그녀의 첫인상은 소위 "좀 노는 애"였다. '역시 관상은 과학이었어!' 라며 맘에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친구 소개로 온 거니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고 빠빠시 하고 싶었다. 


 의외로 말은 잘 통했다. 나완 다르게 긍정 에너지가 넘쳤고 귀여운 목소리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그녀는 지방에 친척분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는데 밥은 먹고 가라 사정하셔서 어쩔 수 없었다며 늦은 것에 대한 사과를 했다. '생각보단 괜찮은 애구나...' 그렇게 미지근했던 첫 만남이 지나가고 한 달에 두세 번 친구처럼 만났다. 첫인상과는 다르게 털털하고 따듯한 마음을 가진 그녀가 점점 내 안으로 들어왔다.  태양빛이 내리쬐던 그날을 지나 낙엽이 떨어질 무렵 난 고백했고 마침내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의 벚꽃을 맞이 한 봄날 우린 부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인연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만일 그때 내가 널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아내는 내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별 맘이 없어 조금 늦더라도 상관없단 마음으로 아주 편하게 밥 먹고 왔단다. 그래도 두 시간을 기다려준 게 미안해서 만났는데 웬 오징어가 안드로메다에서도 촌스럽다고 벗어버릴 옷을 입곤 자신에게 손을 흔들고 있더랬다... 아... 그랬구나.  


 딸과 새벽잠 씨름을 하고 나온 아내는 항상 늘어난 운동복에 좀비 같은 모습을 하곤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그럴 때면 매번 연애할 적 모습이 생각나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는 지금 자신의 모습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나보다 돈 잘 벌고 더 좋은 사람 만났더라면 덜 힘들었을 텐데... 라며 자책한다. 


 하지만 이내 딸을 꼭 안고 있는 그녈 보고 있노라면 미안한 생각은 잠시 잊는다. 아내는 분명 처음 본 그때보다 더 사랑스럽고 예쁘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분명 내 아내에게 선물하라고 생긴 시임이 틀림없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항상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작가의 이전글 #7 아프냐... 나도 아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