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기
비정한 아비는 딸의 두 손을 사정없이 낚아채 묶었다. 몸을 비틀고 악을 썼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내 날카로운 바늘이 그녀의 팔 위를 사정없이 찔렀고 사방이 막힌 흰 공간엔 비명만이 깊게 울려 퍼졌다.
"네~수고하셨습니다. 자~ 사탕~"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예방접종 날이다. 아침부터 몸이 부산하다. 한 달 전 예약한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함이다. 아동병원도 나름의 등급이 있어 인기 많은 곳은 미리 찜해야 접종이 가능하다. 어제 미리 싸 놓은 가방과 잠이 덜 깬 아이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한다. 처음엔 뭔가 싶지만 녀석도 이 루트가 익숙하기에 긴장하는 표정이 역 역하다. 병원에 도착하면 열과 몸무게, 컨디션 체크를 마치고 대기한다. 그때부터 딸의 심장은 콩닥콩닥, 몸을 비비~틀고 불안함에 엄마를 더 꼭 껴안는다.
"가연이 들어오세요~" 호명과 동시에 당당히 입장! 딸은 오랜만에 만난 의사 선생님을 자길 잡아먹을 호랑이로 착각하고 한 번만 살려달라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댄다. 안타깝지만 이 시간부턴 선택권은 없다. 아빠는 범죄자를 체포하는 경찰관 마냥 아이의 몸을 꽁꽁 묶어야 한다. 포박이 약하면 의사 선생님의 깊은 한숨과 날카로운 간호사 누님의 "더 꽉 잡아주세요!"라는 명령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하렴... '
그렇게 힘겨웠던 접종은 다음 회차를 기약하며 마무리 짓는다. 금붕어 마냥 두 눈이 퉁퉁 불어 빨개진 아이는 선생님이 주신 사탕을 홀짝이며 모두를 용서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것이 끝!이라면 좋겠지만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주사를 맞은 지 30분부터 다음날까진 열이 오를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주시해야 한다. 특히 열나고 독한 폐구균이나 독감주사를 맞고 왔을 땐 감시병 마냥 손엔 온도계를 들고 5분 대기조가 된다. 낮 동안 잠잠한 열이 저녁이 되어서야 날뛸 때가 많기 때문이다. 뭐하나 쉬운 게 없는 게 육아다. 녹초가 되어 잠든 아이를 눕히고 한숨 돌리며 조용히 한마디를 건넨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잘 참아줘서 고마워.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