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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맘 Mar 08. 2024

당신의 어렸을 때 기억은 어떤가요?

오늘 모닝 토크 주제 중에 하나였던, "당신의 가장 어린 시절 기억은 무엇인가요?"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많아 내 머릿속 생각 정리를 위해 글을 남긴다.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해 캐나다 친구 Tyron 은 본인과 동생이 어두운 곳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본인이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Vasly은 어린 시절 다쳤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Unsplash의Annie Spratt

나도 어린 시절 기억을 하기 위해 생각을 해보았지만 좋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의 가장 어린 시절 기억은 4살 때쯤, 자고 있는데, 동생이 포크로 나를 찌르는데 아빠는 웃고 있던 기억이다. 그 후에 올라오는 기억은 컵라면을 먹고 싶어서 준비하다가 뜨거운 물을 쏟아 엄마한테 혼난 일, 동생이 침 뱉어서 싸운 일, 엄마 아빠가 싸운 일, 아빠한테 맞았던 일, 엄마한테 혼난 일, 초등학생 때 캠프 같은 것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여행을 갔는데 적응 못하고 힘들었던 일 같이 좋은 기억은 없고 죄다 안 좋은 기억들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왜,
나의 기억에는 안 좋은 것만 남아 있을까?


아무리 싸움이 잦은 집이라도 365일 싸우지는 않았을 테고, 삼시 세끼 꼬박꼬박 밥을 챙겨주던 부모인데, 왜 나의 기억에는 좋은 추억은 들어 있지 않고 나쁜 기억들만 들어 있는지 나의 도덕심이 의심되기까지 했다. 이건 내가 이상한 것인가? 아니면 모두 다 이런 것일까? 

Unsplash의Caleb Woods

내가 가장 친했었다고 생각하던 친구가 있는데, 7살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었다.

길을 걸어가면서 굴러가는 낙엽만 보더라도 함께 땅에 주저앉아 낄낄거리면서 배꼽 잡고 웃을 정도로 붙어 있으면 세상이 재미있어 보였던 친구였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쯤, 공부를 못하던 내가 갑자기 그 친구보다 공부를 잘하게 되니, 그 친구는 울면서 나에게 나쁘고 원망스럽다고 말했었다. 그것이 그 친구와 친구 사이가 끝난 마지막 사건이다. 그 후 우리 학교 고등학교 때 놀러 왔다가 마주쳤는데, 담배 냄새가 엄청나던 것이 그 친구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만약 그 친구를 다시 마주친다면,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남녀 간의 관계는 사귈 때는 없으면 못 살 것 같이 굴다가 헤어지고 나면, 추억들이 되돌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으로 변한다. 어리고 순진하고 멍청했던 내가 원망스러워지고 그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이 아깝고 원망스러울 정도로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었어 '남'이라는 글자가 되었을 뿐인데,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Unsplash의Trym Nilsen

집에 와서 남편에게 어릴 때 좋은 추억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남편은 부모와 같이 한강에서 컵라면도 먹고, 롯데월드에 가서 엄마는 놀이기구를 못타기에 아이들 대신 줄을 서주고, 여행도 하고 분수가 있는 호텔 뷔페도 다녀 온 이런저런 추억이 많다고 했다. 

도리어 나에게 "넌 좋은 추억이 없어?"라고 질문했다. 
난 롯데월드나 에버랜드를 부모와 함께 간 적도 없고(7살 때 자연농원은 한번 갔었다고 한다.), 여행도 텐트나 방갈로 같은 곳만 다녔기에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빼 때문에 낚시도 가기 싫지만 따라 다녀야 했다. 식당도 잘 가본 적 없고 어쩌다 식당을 가면 항상 아빠는 이 돈이면 삼겹살이 몇 근인데...라고 하며 불평불만만 늘어놨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부모와 나가는 것을 즐기지 않았고 함께 대화를 하면 항상 싸움이 되었기에 대화도 피했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5학년때 친구네 집 주말 나들이를 따라가서 베스킨 라빈스와 KFC를 처음 가봤고, 아빠와 공원에서 공을 잡으면서 노는 것을 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느꼈을까.


그럼 자기는 우리 집에서 5년 동안 살면서
좋았던 추억이 있어??


  엄마가 아이를 봐준다고 하여 남편이 처가살이를 5년 동안 했던 적이 있다. 나만 이상한 사람인가 싶어서 남편에게 우리 집에 살았을 때 어땠냐고 물어봤다. 우리 남편 또한 우리 집에 대한 좋은 추억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해외여행을 모시고 가도 작은 지갑이 230페소에 팔고 있는데 250페소에 샀다면서 택시에서 서로 소리치며 싸우시고, 해외여행 비용을 모두 우리가 지불하고 단 한 끼만 부모님이 사줬는데, 고맙다는 이야기보다는 그 한 끼에 집착을 하던 우리 부모님과의 여행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남편에게 순탄했을 리가 없다. 


나쁜 기억은 좋은 기억을 덮어 버린다.


5년 동안 알콩달콩 연예를 했을지라도 한 번의 바람으로 5년의 기간은 좋은 추억이 아닌 잊고 싶은 악몽으로 바뀌어 버린다. 10년 동안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친구도 한 번의 배신으로 10년의 추억은 물거품이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낸 그 사람을 내 인생에서 삭제하면서 나의 추억의 자리는 텅 비어 버리고 만다. 

Unsplash의Luis Villasmil

나도 이제 부모의 입장이라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아마 한 번의 손찌검이나 싸움으로 내가 쌓고 있는 행복한 순간이 아이에게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로 변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 기억의 변화의 기준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감정 변화이다. 


그럼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은 부모가 남과 비교하는 것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을 남과 비교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또한 대화가 많지 않았음에 대해 지적했다. 오해가 있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대화를 해서 풀면 되는데  대화가 없이 쌓아두기만 하면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널 수도 있다고 했다. 또한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계란이 스스로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면 프라이가 될 뿐이다. 부화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요새 부모들은 경주에서 뒤처질까 봐 아이에게 성장할 시간도 주지 않고 본인이 깨기에 모두 다 프라이가 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성장할 시간을 주며 명령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남과 비교하지 말고, 대화를 많이 하고, 명령하지 말자.

솔직히 한국에 있다면, 모두 수능이라는 같은 결승점에 도달 해야하기에, 이를 지키기가 참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할 수 있지 않을까? 

Unsplash의Ehimetalor Akhere Unuabo

 나에게는 추억이지만 남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끔찍한 기억일 수도 있기에 다른 사람의 추억에 간섭한 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힘들고 서운한 일이 있으면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마음속에 응어리진 채 기분 나빠하지 말고 화내지 말고 나이로 누르려고 하지 말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힘듦과 어려움에 대해 참된 대화를 시작할 때 서로의 상처에 쌓인 얼음은 사르르 녹고 치유가 되어 더욱 견고해지며 부정적인 기억이 나를 삼키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부모가 처음이라 몰랐다는 말을 하며 내 무지에 당당하지 말고, 모르면 배워가자. 
지나간 세월을 원망 말고 이제라도 차곡차곡 추억을 쌓는 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Unsplash의Lex Valishv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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