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로봇청소기를 샀다. 청소기를 돌리는 것을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장점이고 돈도 안 드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런데 계속 부풀어 오르는 뱃살이 주장한다. 운동은 운동 기구가 갖춰진 곳에서 제대로 하는 것이 운동이야. 거기다 청소기 돌리는 것이 일이라고 생각하는 남편과 누가 청소를 할 것인가 눈치 싸움 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로봇청소기다. 물론 이것도 손이 간다. 물을 채워주고 비워주고 해야 한다. 로봇청소기를 사는 순간 그동안 고생한 무선청소기를 버리려 했다. 없어야 안 쓰니까. 그런데 버릴 기회를 잠깐 놓쳤더니 둘은 공존하고 있다. 로봇이 할 일과 핸드형 청소기가 할 일은 따로 있다. 과자 먹다 흘린 부스러기 없애자고 로봇에게 임무를 주는 것은 주인이 명령을 제대로 못내리는 것이다.멍청한 주인은 되기 싫다.
로봇청소기 이야기를 나누다 한 친구가 식기세척기 역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식사 후 바로 그릇 씻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때 바로 해주면 편해지는 것 중 으뜸은 설겆이이다. 그룻 한 두개라도 그때 그때 씻어준다. 그렇다고 나 결벽주의자야라고 말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더럽더라도 하기 싫으면 안하는 편을 택한다. 완벽하게 더럽거나 완벽하게 깨끗한 사람은 없다. 자신이 깨끗해야 하는 부분을 스스로 관리하고 남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가정 내 질서는 유지된다. 친구는 얼마전 구입한 식세기 일꾼을 칭찬하기 바쁘다. 근사한 요리를 해 먹는 것도 아니고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릇이 많은 것도 아니고 자꾸 필요 없는 이유를 찾았다. 하루 3끼는 먹고 3 식구면 평균 가족 수이고 그릇은 부족하면 사면 되고 무엇보다 편하다며 친구는 필요한 이유를 쏟아냈다. 또 하나의 일꾼을 들여야 하나?
밖에서 휴대폰으로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냉장고의 상태를 확인하고 에어콘과 난방을 돌리고 공기청정기와 스타일러를 켜고 있다. 집안에 가족은 줄지만 필요한 일꾼들이 넘친다.
의심이 많고 신제품에 대한 호기심은 적은 편이다. 최첨단 제품이 나오면 제일 먼저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보다는 남들이 다 써 본 후 2~3년은 지난 후에 구입한다. 평생 어얼리 어답터(early adapter)는 돼 본적이 없다. 물욕이 없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옷도 유행이 한 차례 지난 디자인의 옷을 뒤늦게 구입해서 그것도 한 해 정도는 묵혔다 입는다. 나에게는 옷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옷장에 넣어 놓고 계속 존재를 기억했다가 나중에 적당한 코디가 생각나면 입는다. 좋은 말로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거다.
휴대폰을 여니 건조기 알람이 있다. '건조가 완료된 세탁물을 그대로 두면 냄새가 나고 어쩌구 저쩌구.... ' 잊고 있었다. 일꾼들은 가족들이 외출할 때 조용히 일을 한다. 주인이 외출한 동안 일을 마쳤으니 이제는 주인이 할 일이 남았다.
그러다 문득,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개고 수납장에 넣어주는 로봇은 언제쯤 나오지? 나왔나? 그런 일꾼은 꼭 먼저 들이고 싶다. 그때가 내 삶에 처음으로 어얼리 어답터가 되는 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