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한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신부를 보니 신부의 언니나 엄마가 된 양 가슴이 울컥했다. 스테이크를 먹고 있자니 신부는 파티 드레스로 갈아입고 친지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 순간 연보라빛 드레스와 신부의 자태에 압도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등 배우들이 총 출동하는 자리에는 포토라인이 있다. 화려하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운 화장과 머리를 하고 여유로운 미소로 서는 자리이다. 우리나라는 드레스를 입고 파티를 즐기는 문화가 아니다. 어쩌다 지인의 결혼식 때마다 화려한 드레스를 보면 나도 드레스를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보고 싶다는 충동적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가지 신부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어색하다. 평소 잘 웃지 않는 신부는 자연스러운 미소까지 완벽하게 준비했어야 했다. 너무 환하지도 않으면서 수줍지만 매력적인 그런 미소. 습관적으로 잘 웃는 배우들이라도 중요한 포토라인에 서야 할 때는 거울을 보며 표정 연습을 하지 않을까? 그 순간 짓게 될 표정으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바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44.5cm × 39cm)에서 소녀가 짓고 있는 알듯 모를 듯한 미소이다. 뒤태를 강조하며 무심한 듯 뒤를 돌아보고 있다.
파란색 터번에 노란색 옷차림은 매우 이국적이다. 파란색에 쓰인 울트라마린은 그 당시 성모마리아의 그림에만 허락된 값비싼 색이었다. 당시에는 금보다도 더 비싼 재료였다고 하니 작가가 얼마나 이 작품에 집중했는지 알 수 있다. 커다란 진주 귀걸이는 배우들이 업체 협찬 받듯이 누군가의 값비싼 물건임이 분명하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는 페르메이르 아내의 것으로 설정하였다. 촉촉한 눈망울은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발갛게 물든 볼은 상기되어 있다. 물기를 머금은 듯한 주홍빛 입술에서는 "여러분, 아름다운 밤이에요"라고 말할 것만 같다. 그러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얼굴은 매력적이지 않다. 그저 눈빛으로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소녀의 정체만큼이나 해석은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페르메이르는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그림을 그렸다. 신교도였던 그는 21세가 되던 해에 가톨릭 가문의 부유한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으며 장모가 소유한 건물에서 처가살이하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는 부인과의 사이에서 15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중 11명의 아이들이 살아 남았다. 장모는 그가 많은 작품을 그려 팔기를 원했지만 페르메이르는 다작 작가가 아니었다. 자신이 만족하는 수준의 사실감을 묘사하는데 온 힘과 시간을 기울였을 뿐이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으로 검증된 작품은 37점에 불과하다. 그 중 2개의 풍경화를 제외하고는 모두 작은 인물화 작품들이다. 화가는 주로 델프트 주택가에서 생활하는 소박한 여인네들을 주인공으로 하였다. 지금은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유명한 화가이지만 생존 당시 델프트와 근처 도시에서만 알려졌을 뿐이다. 그가 사망한 후 200년이 지난 후에도 소수의 수집가들만이 그의 가치를 인정했다. 이 작품은 1881년 덴 하흐에서 열린 미술 경매에서 시가 고작 30유로에 미술 애호가였던 데 똥브(Des Tombe)에게 팔렸고 1902년 사망한 데 똥브가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우스 미술관에 기증하면서 네덜란드의 자랑이 되었다.
이것 외에는 페르메이르의 삶은 알고 싶어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17세기 작가이지만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유명해졌고 작가의 삶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것은 상상의 세계를 무한대로 끌어올린다.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는 1999년 이 그림에 대해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동명의 소설을 발표한다. 소설을 바탕으로 2003년 피터 웨버(Peter Webber)감독은 스칼렛 요한센과 콜린 퍼스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를 제작해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
페르메이르는 43세에 죽어가며 자신이 그린 소녀가 이렇게도 유명해질 줄 알았을까? 소녀의 눈빛과 미소는 화가를 향해 있었다.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 "저 지금 잘하고 있는 거 맞나요?"
이 작품은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린다. 눈썹이 없고 오묘한 미소에서 루브르의 모나리자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리라.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 상인의 의뢰를 받아 그린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탈리아를 떠날때 모나리자와 함께 했다. 그만큼 애착을 가진 작품이었다. 페르메이르 역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작품을 자신의 소장품으로 작업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소설과 영화적 상상력이 그런 확신을 갖게 만든다.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 그림은 여전히 강력한 신비를 내뿜고 있다. 소녀의 표정에 사로잡혀 소설을 썼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코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신비로움이 계속되기 바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촉촉한 눈망울에 물기를 머금은 반쯤 벌린 입술로 누군가를 사로잡는 표정을 연습해 두면 인생 최고의 순간과 사진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언제 어떻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지 모른다. 드레스를 입고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표정으로 뒤돌아보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적어도 한 사람은 지금 거울 앞에 서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