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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Oct 16. 2020

생리 예찬

episode #12

생리가 시작됐다.

난자 채취가 취소된 지 2주가 넘어가고, 또 5일이 지났을 때 드디어 홍양이 찾아왔다. 사실 이틀 전 생리 예정일이 됐는데도 안 한다고 병원에 전화를 했었다. 담당 간호사는 주치의에게 물어보고는 이틀 후 내원하라며 진료예약을 잡아 주었다. 그런데 진료 날 아침 피가 비친 것이다.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다시 시험관 시술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초경은 열두 살 12월 25일이었다. 크리스마스 날이라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날짜다. 엄마는 예수님 탄생과 딸의 첫 생리일이 같다며 좋아하셨지만, 그때 난 뭔가 귀찮은 일이 시작된 것 같아 같이 기뻐할 수가 없었던 기억이다.


역시나 예감은 적중했다. 생리가 세상 귀찮은 일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리가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긴장해야 했다. 최소 3일은 잘 때도 조심스러웠다. 생리 팬티를 겹쳐 입고, 길게 커버하는 생리대를 사용해도 생리양이 많을 때는 새어 나왔다. 체육시간에 격렬히 몸을 움직이다 겉에서 보일 정도로 혈흔이 새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는 지나가는 남자 선생님이나 남학생이 보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사춘기 소녀에게 생리는 부끄럽고 성가신 일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생리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꼬박꼬박 잊지 않고 찾아오는 홍양은 일종의 짐이었다.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했고, 생리 전에는 여드름, 피로감, 식욕 폭발 등 생리 전 증후군을 겪었다. 외출이나 여행 시에는 생리대 여분을 챙겨 다녀야 했고, 자주 화장실에 가서 확인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생리통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토록 불편한 생리가 이제는 너무나 반갑고, 고맙다. 시험관 시술의 첫 단계가 생리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원리는 이렇다. 배란되고 난 뒤 자궁 내막이 점점 두꺼워지다가 어느 시점(정확하게는 배란 후 14일 뒤)이 되면 내막이 허물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생리이다. 일반적으로 생리 시작 후 2~3일째 초음파 진료를 통해 예비 난포들을 확인하고 난포들을 키워 난자 채취에 이르게 된다. 결국 생리가 없으면 시험관 시술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럼 자연적으로 생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시험관 시술을 못하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자연 생리가 안 되는 것은 대개 난소 기능이 많이 떨어진 경우인데, 호르몬 제재를 투여함(경구약 복용 또는 주사)으로써 인위적인 생리를 유도한다. 자연 생리를 기다렸다가 나오지 않아서 호르몬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진료 중 해당 주기에 난포가 없거나 해서 배란이 안 될 것으로 예상될 경우에도 호르몬 경구약을 처방받는다.


생리를 더 이상 안 한다는 말은 폐경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폐경은 무월경이 1년간 지속될 때를 말하고, 마지막 생리 후 1년까지의 기간은 폐경 이행기라 한다. 나는 지금 이 폐경 이행기에 있다. 흔히들 갱년기라고 부르는 그 시기의 초반에 있다. 폐경의 확인은 혈액 검사 상 에스트로겐 여성호르몬(e2)과 난포자극 호르몬(FSH)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데, 폐경기에 이르면 e2는 낮고(생리 2~3일째 5 미만), FSH는 높다(40 이상). 보통 생리 2~3일째 정상적인 FSH 수치는 10 미만이다. 적어도 10점대가 되어야 그 주기에 난포가 생성되고 자랄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어떤 난임 의사는 생리 2~3일째에 혈액 검사를 실시하여 e2, FSH, LH(황체형성 호르몬) 수치를 확인 후, e2가 낮고 FSH가 높을 경우 호로몬제를 처방해서 난소를 한 달간 쉬게 하기도 한다.





최근 <1호가 될 순 없어>라는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 팽현숙이 병원을 찾아 갱년기지수를 점검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녀는 감정 조절의 어려움과 급격한 체온 변화 증상을 호소했고, 우울 지수도 높게 나타났다. 이 얘기는 팽현숙만의 얘기가 아니다. 현재 나도 동일하게 겪고 있다. 갑자기 더워 땀을 닦다가 어느 순간 또 추워져 옷을 껴입는다. 별일 아닌 것에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자다가 몇 번씩 깬다. 심해지면 얼굴에 홍조도 나타나고, 얼굴로 열이 오른다. 갱년기 즈음부터 깜빡깜빡한다는데, 난 원래부터 건망증이라 모르겠다.


이 갱년기 증상은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답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폐경으로 인한 부작용이 갱년기 증상들이라면, 폐경 상태를 최대한 늦추면 된다. 몸이 스스로 폐경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거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호르몬 치료이다. 내 몸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으니 외부로부터 호르몬을 투여받는 것이다. 호르몬 약을 먹으면 바로 증상들이 사라진다. 호르몬 치료는 유방암의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양방의학에서 권하는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폐경 이행기인 경우, 시험관 시술 시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방 의학에서는 호르몬 요법을 권하지 않는다. 특히 시험관 시술을 하는 경우, 난소의 기능을 다시 되찾아주는 방향으로 치료를 권한다. 한약, 침, 부황, 뜸 등을 통해 난소가 다시 제 기능을 하도록 돕는 치료이다. 내 몸은 한약과 잘 맞아 한방치료로 난포가 자라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한방치료와 시험관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임신 경험을 한 것은 아니기에 최고의 방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한약이 체질적으로 몸에 안 맞거나, 자궁 관련 문제가 있는 경우는 권하지 않는다.




라엘의 <여성 생리 인식조사 결과>에서 생리는 불편하고, 부끄럽고, 귀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말 그런가?

<일상의 틀을 바꾼다는 것은 세상을 새로 짓는 일>에서도 언급했지만, '바디 버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면 생리대를 사용하는데, 시판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보다 한 100배는 귀찮다. 매번 손으로 빨아야 하고, 외출 시에는 생리대 보관용 백을 따로 소지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면 생리대를 고집한다. 내 소중한 피부를 위해, 자궁 건강을 위해, 경제성을 위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한다.


이제 더 이상 생리는 귀찮은 그 어떤 짐이 아니다. 불편하다고 폄하해서는 안 될 존재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애타게 고대하는 것, 시작되면 감사한 것, 내 건강상태를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가 생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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