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늘 고요하면서도 차갑다. 아침 공기는 뺨을 톡 쏘듯 매서웠고, 길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발길을 붙들었다. 이런 날이면 민재는 꼭 연탄을 갈아야 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작은 집에서 연탄은 생명줄이었다.
“민재야, 연탄 몇 장 남았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방 안 깊숙이 울렸다. 허리 굽은 어머니가 매번 직접 연탄을 옮길까 봐 민재는 늘 서둘러 손을 들었다. “제가 갈게요, 어머니.”
창고에 쌓인 연탄은 몇 장 남지 않았다. 손으로 가득 움켜쥐어도 가벼울 정도였다. 민재는 한 장을 꺼내 들고 아궁이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아직 희미하게 타오르던 연탄은 열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민재는 잠시 멍하니 연탄을 바라봤다. 부서진 가장자리, 까맣게 그을린 표면, 그리고 그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불씨. 어째서일까, 민재는 문득 자신을 이 연탄에 빗대어 생각하게 됐다.
민재는 올해로 쉰셋이 됐다. 어린 시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한 청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쟁 같던 회사 생활, 그리고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었던 날들. 그는 그저 무언가를 태우며 살았다. 불꽃을 피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때였다. 어머니가 천천히 걸어와 연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 연탄 말이야. 이렇게 자기 몸을 다 태워서라도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잖니. 저렇게 살면 어때? 무언가를 남겨.” “남긴다고요?” “그래, 연탄재가 되더라도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민재는 뜨겁게 뜨거워지는 연탄을 한참 들여다봤다. 자기를 태우며 불꽃을 남기는 연탄처럼, 자신도 무언가를 태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무엇을 태울지 몰랐다.
며칠 뒤, 민재는 오랜 친구 승환을 만났다. 승환은 항상 에너지가 넘쳤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민재는 자신의 연탄 같은 삶을 털어놓았다.
“승환아, 내가 뭘 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내 열정을 찾지 못했어.” 승환은 웃으며 물었다. “열정이라는 게 뭔지 아냐?” 민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지금 네가 가장 하고 싶은 거야. 뭔가 하고 싶은 게 없니?” 민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어릴 적 연탄아궁이 앞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던 기억이.
민재는 용기를 내어 동네 문화센터에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민망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쉰 넘은 자신이 엉성한 음정을 내뱉는 게 웃음거리 같았다. 하지만 점차 민재는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가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은 어느 자선 콘서트였다. 관객석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민재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열정을 태우고 있다는 걸 느꼈다.
몇 년 후, 민재는 노래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됐다. 지역 행사, 봉사 공연, 그리고 작은 음악회. 그의 열정은 늦게 피웠지만, 그 누구보다도 뜨겁고 강렬하게 타올랐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민재는 자신이 연탄처럼 태운 노래가 누군가의 마음속을 따뜻하게 데워주길 바라며 또 한 곡을 불렀다.
노래가 끝난 후 그는 하늘을 보며 속삭였다. “어머니, 저 이제야 알았어요. 연탄처럼 사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연탄처럼 마지막까지 자신을 태우며 사는 삶은 비록 짧고 소박할지라도, 그 열정은 추운 세상 어딘가를 따뜻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