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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생각

2025 여름 효도 휴가

by 약산진달래

"어디 놀러라도 갔으면 글이라도 썼을 텐데, 이번에는 아쉽네."


효도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올케 언니의 문자였다. 사실 이번 여름은 모두 돌아가고 나니, 아쉽게도 어디로도 떠나지 못했다. 쉽게 내려갈 수 있는 시골집도 내려가지 않았다. 길면 2박 3일 일정으로 내려온 오빠 가족은 정말 2박 3일만 마치고 본인들 집으로 돌아갔다.


휴가 기간에 부모님을 따라 온 조카 말처럼 "효자 부모는 힘들어요"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수 있다. 언제나 휴가나 명절이면 부모님을 만나러 오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조카들은, 성인이 되었어도 부모들이 휴가 기간에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갈 생각을 안 하니, 개인적인 휴가를 보내든지, 아니면 부모를 따라 할머니를 만나는 ‘휴가 아닌 휴가’, 즉 효도휴가를 보낼 수밖에 없다.


조카와 함께 이번 여행의 스케줄을 일단 잡아보았다. 추천지는 가장 가까운 고창 구시포 바닷가와, 지난번 말이 나왔던 남해였다. 남해까지 4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2시간이면 된다는 조카의 정보에 따라 남해도 갈 수 있으면 가보자고 마음속으로만 결정했다.

그러나 사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날이 너무 더웠고, 엄마를 모시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엄마는 어디든 따라 나설 생각이신 듯했다. 언제나처럼.


금요일 저녁에 내려온 오빠 가족은 엄마와 잠깐 산책을 마친 뒤, 올케 언니는 친구 집에서 자고 오기로 했다. 친구 남편이 해외에 갔다고 했다. 올케 언니를 친구 집에 데려다주고 온 오빠는 새벽에 일어나 설사를 했다. 새벽에 잠이 깬 나는 그 소리를 마음 졸이며 들었다. 아마 저녁으로 시켜 먹은 짜장면집 볶음밥 때문인 것 같았다. 이젠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난 오빠의 얼굴은 많이 부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안 부었는데?”

내 말에,

“이젠 다른 데로 갔나 보네.” 하며 얼굴을 만지작거리더니, 붓기는 여전히 있다고 알려준다.


이번 가족 휴가 중 나만의 첫 번째 미션은 안과 다녀오기다. 그동안 오빠네가 오면 다녀오려고 미루었기 때문이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온 올케 언니를 데리고 온 오빠는, 같이 가지 않아도 된다는 내 말에도 굳이 안과에 따라 나섰다.

처음 가보는 안과라 혹시 휴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전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봤지만, 안내가 없어서 안심하고 갔는데, 역시 휴가 시즌이었다. 그때 건너편 스타벅스를 발견한 오빠가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도로는 불볕이었고, 얼굴에 햇볕 알레르기가 있어 모자와 양산까지 들고 있자니 더 더웠다. 높은 습도로 인해 잠깐 동안 도로를 걸었을 뿐인데도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그러나 스타벅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냉기가 온몸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만한 피서지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오빠는 카페 라테를 시켜놓고 의자에 앉았다.

언니와 통화한 오빠는 커피 쿠폰을 선물해 봐야겠다며 ‘카카오 선물하기’를 배워보려고 했다. 그러나 처음 하는 일이라 결제까지 가지 못하고 실패. 나는 “선물하기 배우거든, 메가커피를 쏴 달라”고 농담처럼 부탁했다.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다. 집에 있는 가족들의 커피를 주문하고, 오빠와의 짧은 데이트는 마음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끝이 났다.


그렇게 오빠 가족의 효도휴가는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나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평범한 하루가, 특별한 일 없는 지나가는 오늘 이 시간이 감사하다. 다시 내년에도 변화 없이 이런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오빠와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거리를 거닐며,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렇게 2025년의 효도휴가는 재미있는 일 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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