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7 문효치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아침마다 날짜를 쓰다보면 ‘놀람’이라는 감정의 도끼가 날카롭니다. ‘벌써‘하며 정신을 깨치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느 한쪽에서는 미미한 좌절이 올때도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유한성’이라는 기준.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어요. 앞 날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심지어 법을 다루는 판사마저도 ‘날’이라는 정의를 ‘시’로 바꾸어 황당무게한 기준을 만들어 놓고요, 정말 앞에 오는 ‘날’의 모습을 형용하기는 아마 하느님도 혼동할 정도에 이르렀으니 말입니다.
교회에서는 사순절 기간(예수의 부활하기 전 40일 동안 예수의 고난과 대속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촛불행동 무대에 오른 한 신부님께서는 말씀하셨죠. ‘이 힘들고 지루한 시간을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한 뜸 들이기 시간이다 라고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라고요. 어제 저의 신부님께서도 그와 비슷한 말씀을 하시면서 사순절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마음에 희망을 주셨고 성당에 장식된 보랏빛 십자가의 형상이 유달리 신비로워 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사순절과 부활절이 춘 삼월 사월에 들어있지요. 우리역사에서도 얼마나 많은 아픔과 슬픔이 있는 달 인가요. 40일간 몸과 마음을 정결하고 경건하게 하는 사순절이 기독교인들을 넘어 누구에게나 특별한 날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쉽게도 극우 개신교들로 인해 민주주의가 후퇴를 넘어 사라지게 될 위험까지 보이고 있어서, 더욱더 사순절의 의미가 저를 경각시키네요. 맛있는 밥도 좋지만, 최소한 생사에 필요한 식곡이라도 될 수 있도록 어서빨리 탄핵결정이 이루어지질, 마땅히 탄핵인용이 선포되길 기도할 뿐입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눈만 껌벅껌벅 거리던 남쪽 땅 매화들이 ‘진짜 포고령’을 발포하며 사람들의 육감까지도 들썩이게 만드네요. 거리가 멀어서 다시 가기 어렵지만, 오히려 봄의 전령사인 봄바람이 저를 기다리라 명령해주니, 순응할 수 밖에요. 어딜가나 말 잘 듣는 사람이 손해보는 세상이라지만, 자연에 기대어 ‘기다림의 미학’을 공부하는 것도 이 나이에 마땅히 따라야 할 순서임을 깨닫죠. 시간이 유한하니까요.^^ 문효치시인(군산출생)의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 문효치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허공에 태어나
수많은 촉수를 뻗어 휘젓는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될
온몸을 태워서
찬란한 한 점의 섬광이 될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빛깔이 없어 보이지 않고
모형이 없어 만져지지 않아
서럽게 떠도는 사랑이여,
무엇으로든 태어나기 위하여
선명한 모형을 빚어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되어라.
이 어려운 시기에 어울리는 노래 한곡 추가합니다. 탄핵인용을 기도하면서!!
김지하 작사, 김민기 작곡, 양희은 노래 <금관의 예수>입니다.
https://youtu.be/cZ2HMUj5UIA?si=haUK8IgQDSw4r_X0